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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정당 머신의 국정 독점, 당연한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06 19:00

수정 2023.12.13 10:49

[fn광장] 정당 머신의 국정 독점, 당연한가
19세기 미국 지역별로 정당 머신(machine)이 위세를 과시했다. 충성심·기율로 무장한 당원들이 보스를 중심으로 기계처럼 움직이는 수직적 조직이었다. 당원들을 조폭처럼 경직된 위계질서에 잡아넣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돈, 일자리 등 이권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뉴욕 태머니홀(Tammany Hall)이 악명 높은 대표적 정당 머신이었다.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온상이었다. 결국 20세기 전반기, 혁신주의 분위기 속에서 정당 공천의 투명성·개방성이 높아지고, 이권 제공 등의 범법행위에 대한 법망이 세지면서 정당 머신들은 쇠락했다. 그 후 정당 머신이라는 표현은 미국에서 잊혀졌다.

미국과 달리 세계 곳곳에는 오늘날도 정당 머신이 남아 있다.
가장 무서운 정당 머신은 단연코 북한 노동당일 것이다. 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스탈린의 소련, 마오쩌둥의 중국 등 극렬 정당 머신 국가의 계보가 북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런 전체주의 국가들의 단일정당제는 차치하자. 문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일부 복수정당제 국가들에도 정당 머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 우리나라가 여기 포함된다. 전체주의에서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정당 머신으로 불릴 만한 조직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야의 양대 정당을 보자. 당내 권력자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수직관계가 유지된다. 그 질서에 맹종하지 않는 사람은 심한 당내 비판에 직면하고, 공천에서 불이익을 당해 도태된다. 당론에 반대하는 일은 정치생명을 거는 도박이고, 당내 권력 주변에 가깝게 서지 못할수록 자꾸 외곽으로 밀려 결국 조직에서 버티지 못하고 탈당까지 하게 된다. 당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런 정당들이 기계처럼 획일적으로 움직일 때 정당 간에 유연한 소통, 융통성 있는 조정, 실용적 타협은 요원해진다. 그들이 정치·국정을 독점하는 현실에서 강대강 집단주의적 대결과 교착은 일상이 돼버렸다. 19세기 미국의 정당 머신들이 지역에 분산돼 있던 데 반해, 우리의 정당 머신들은 중앙집권화돼 전국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정당 머신의 국정 독점을 더 고착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요즘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가 그러하다. 비례대표제는 의회 의석을 정당별로 나누는 제도다. 정당들만 존재하는 세계다. 특히 연동형은 전체 의석을 정당별로 나누되, 지역구 선거 상황을 부수적으로 고려하는 제도다. 그나마 병립형은 비례대표 의석만 정당별로 나누고 지역구 의석은 선거구 투표로 결정하는 제도라 정당의 완전한 독점화를 뜻하지 않는다.

이런데도 병립형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고, 연동형이 새 시대의 변혁이라고 대중을 오도(誤導)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당 머신들의 국정 독점이야말로 시대착오이다. 유권자를 집단화하던 대중(mass)사회의 주역이었던 정당 머신을 오늘날 탈대중(post-mass)사회에 국정 독점자로 떠받들겠다는 발상이 통하겠는가. 4년 전 도입된 (준)연동형은 정당 간 야합의 산물이었다. 대중의 원자화, 사회의 파편화·다원화·급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탈대중사회에 이런 제도가 잘 통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겠는가.

물론 선거와 국정 전반에서 정당들이 필요하다. 무(無)정당 체제는 극도의 혼란이나 1인 독재로 전락한다. 이처럼 필요성이 큰 정당들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자연히 나타나 적응하며 기능을 수행한다.
오히려 억지로 등장한 정당 독점체제가 폐해를 키운다.

5·16 쿠데타 후 1963년 실시된 국회의원선거는 집권세력의 책략으로 무소속은 배제하고 정당 출마자만 허용했다.
이게 정상인가. 그 60년 후 탈대중사회가 된 현재, 정당만이 의석배분의 수혜자가 되는 독점 제도를 정상으로 당연시할 건가. 정당은 유기체처럼 진화해야지, 인위적으로 특권 조직이 되어 기계처럼 작동해선 곤란하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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