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이 현존하는 다양한 소리를 음악으로 승화한 앰비언트 음반으로 돌아온다.
루시드폴은 12일 낮 12시 각종 음원사이트에 두 번째 앰비언트 앨범 '비잉-위드'(Being-with)를 발매한다. '비잉-위드'는 루시드폴이 현존하는 다양한 소리들을 재료 삼아 만든 다섯 편의 음악 모음집으로, 우리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의 '공존'을 생각하게 한다. 루시드폴은 공감각적인 사운드로 리스너들에게 여운을 선사할 예정이다.
타이틀곡 '마테르 돌로로사'(Mater Dolorosa)는 공사장의 거친 소리를 모아 만든 음악이다. 루시드폴은 '고통받는 어머니'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인간의 욕망으로 신음하는 지구, 그리고 함께 고통받는 모든 생명을 위한 연민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루시드폴은 "소리 폐기물을 음악으로 업사이클링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다"라고 그 의미를 전했다.
이외에도 앨범에는 곡을 이루는 여덟 마디 모티프가 반복되며 변주되는 과정이 돋보이는 '마인드미러'(Mindmirror)를 시작으로 현악기 사운드를 길게 늘어뜨려 소리의 재탄생을 보여 주는 '아비르'(Aviiir), 바닷속 소리부터 재래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모여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미크로코즈모'(Microcosmo),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위로를 전하는 '트렌센던스'(Transcendence) 등 루시드폴의 섬세한 감각이 깃든 곡들이 수록된다. 독하게 소리를 탐구하는 루시드폴의 음악적 자아가 만들어낸 수작이다.
루시드폴은 "소리를 의미 있게 경험했을 때 음악이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본인을 필터로 여기고 다양한 소리들을 통과시켜 색다른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근 루시드폴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도에서 귤 농사와 음악 작업을 병행하지 않았나.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그저께 귤 수확을 끝내고 배송까지 마친 상태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정말 힘들긴 했다.(웃음) 보통 여름에는 오전 3시30분, 겨울에는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서 차를 마신다. 여름에는 더워서 오전 10시 전에 일을 끝내야 하니까 농장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일을 오후에 한다. 겨울에는 아침에 제일 머리가 맑을 때라 음악 작업을 하거나 글을 쓰고 몸 쓰는 일을 오후에 하는 편이다. 또 비올 때는 쉴 수 있으니까 그때 음악을 하고…그러면서 준비를 했다.
-신곡의 장르는 무엇인가.
▶어쩔 수 없이 앰비언트 뮤직 혹은 미니멀 뮤직이 아닐까. 사실 장르가 모호하다. 하지만 규정을 하지 않으면 전달하기가 어려우니 앰비언트 뮤직 정도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앰비언트 앨범을 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제작 계기가 있는지.
▶나는 꽤 긴 시간 기타를 치면서 곡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2018년쯤 농기계에 손가락이 다쳐서 기타를 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때 '앞으로 기타를 못 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여서 오히려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을 멀리하고 다른 음악들을 찾다가 우연찮게 앰비언트 음악들을 많이 듣게 됐다. 소리에서 음악적 요소를 끄집어내 음악화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소리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기타만 칠 때는 없던 음악적 자아가 커지게 됐다. 노래를 탐구하는 사람, 독하게 소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두 개의 자아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 둘을 섞은 게 '너와 나' 앨범이고, 이후에는 구별해서 음반을 내자고 생각했다.
-타이틀곡 '마테르 돌로로사'에 대해 소개해달라.
▶공사장 소리를 녹음해 음악으로 만든 곡이다. 소리를 녹음하고 수천, 수만 단위로 잘게 잘라서 섞은 뒤 셔플링을 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러면 원형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나오는데 그걸 다시 샘플링해서 음정이 있는 악기화를 했다. 예를 들면 철근을 깎는 소리를 거슬리지 않는 소리로 만든 거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는 항상 개발에 신음하고 있는데, 개발하는 이들을 탓하고 싶진 않지만 청각적으로 참 괴로운 일이긴 하다. 이 때문에 낮 시간에 녹음을 할 수 없으니까, 이 폭력적인 소리를 음악으로 바꿔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또 음악인으로서 듣기 싫고 버려진 소리 폐기물을 좋은 소리로, 음악으로 되돌리는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다. 그런 작업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 만들게 된 곡이다.
-이번 음반에서는 미생물이 발효하는 소리, 공사장 소리, 바닷속 소리 등을 음악화했는데.
▶우리가 소리를 의미 있게 경험했을 때 음악이 된다고 생각한다. '음악'하면 생각나는 피아노, 기타, 컴퓨터가 아니라 세상에 뿌려진 기본의 소리를 '나'라는 필터에 통과시켜 음악으로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진귤 나무의 전기 신호를 받아 미디 노트로 기록한 곡 '모멘트 인 러브'(Moment in Love)를 지난 2021년 발매했고, 내가 농사지을 때 직접 만들어 쓰는 액비(액체비료)가 발효되면서 익는 소리를 쭉 녹음해 곡을 만들기도 했다. 또 수중 마이크를 통해 물속을 녹음하기도 했는데 그 소리의 정체가 물인지, 물고기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신기하더라. 이 곡이 신보 3번 트랙에 수록됐다.
-전공은 다른 분야인데, 이 공부가 음악을 할 때도 영향을 미치는지.
▶사실 내가 전공을 배울 때는 도서관에 앉아 책을 통해 학문을 공부한 게 아니라, 실험실에서 포닥을 모집하면 지원해서 교수님의 연구를 도왔다. 수업도 별로 안 듣고 실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연구노동자'였어서 공부를 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런 차원에서 보면 뭔가를 만든다는 게 같은 결인 듯하다. 음악을 만드는 것도 대상은 달라졌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의 유년시절이 음악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나.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유년시절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자면 '슬픔이 많은 시기'였고, 그 시절은 나에게 예민한 감수성을 남겼다. 어릴 때는 부산에 살았는데 집 문을 열면 앞이 바로 바다였다. 당시엔 이사를 자주 다니니 친구가 없어서 그 앞에서 혼자 공을 차면서 놀곤 했다. 그럼에도 나의 근본적인 마음에 단단한 긍정이 있는 건 어머니 덕이다. 물질적으로 많은 걸 주진 못하셨지만, 끝없는 사랑을 주셨다. 덕분에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긍정이 단단하게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런 부분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뮤지션부터 농부까지 하며 '프로N잡러'로 불리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이유가 있다.(미소) 외국에 나갈 때는 음악을 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보장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연구원을 하게 됐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음악을 병행하다가 어느 순간 음악만 하게 됐다. 이후 음악인들이 예능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는데 나는 그걸 못하겠어서 제주로 가게 됐고, 이주한 뒤 희한하게 농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N잡러'가 됐는데 흘러가는 대로 하게 된 것이다.
-앨범이 LP로도 나오게 된다. 피지컬로 발매하는 이유가 있다면.
▶곧 LP가 발매될 예정인데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다. 두 번이나 테스트를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 드롭했다. 이걸 완성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그럼에도 LP를 내는 이유는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하고 싶어서다. LP는 소리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사람들도 그걸 느꼈으면 좋겠다. 피지컬 앨범을 포기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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