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나라 때 포강(浦江)이란 곳에는 대원례(戴原禮)라는 의원이 있었다. 원례는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시경>과 <예기> 등을 많이 읽었고, 심성이 곧으면서 항상 남에게 베푸는 일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원례는 의학에도 뜻을 두어 멀리 오양(烏陽)까지 걸어가서 주진형(朱震亨)을 스승 삼아 의학을 배웠다. 주진형은 호가 단계(丹溪)로 주단계로도 불리며 금원사대가의 최고 명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주진형은 원례가 남들에 비해서 심성이 착하고 영특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의술을 전수했다. 이로써 원례는 의학에 대한 식견이 넓어지고 두터워졌으며 환자들에게 처방을 하면 탁월한 효과를 봤다.
어느 날 원례의 아버지쪽의 사촌인 중장(仲章)이란 자가 음력 6월 한여름에 심한 열병이 났다. 중장은 얼굴이 붉고 헛소리를 했으며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이때 한 의원이 대승기탕(大承氣湯)을 투여했다. 대승기탕은 상한(傷寒)에 열이 심하게 나고 실증이면서 속이 매우 더부룩하면서 변비가 있을 때 설사를 시켜서 열을 내리는 처방이다. 그런데 오히려 열이 더욱 극심해졌다.
원례는 진맥을 해보더니 “양쪽 손의 맥이 모두 부(浮)하면서 허(虛)하고 무력(無力)하니, 이것은 진짜 열이 아니고 가짜 열입니다. 장자화(張子和)는 ‘이런 경우에 마땅히 피부를 풀어야지 속을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바로 이 증이 그에 해당합니다.”라고 했다.
그러고서는 곧 부자(附子), 건강(乾薑), 인삼(人參), 백출(白朮) 등이 들어간 처방을 했다. 원례의 진단은 진한가열증(眞寒假熱症)으로 속은 차면서도 곁으로는 열이 나는 증을 말한다. 이때 한(寒)이 진짜이기 때문에 곁으로는 열이 나더라도 온열(溫熱)한 약을 처방해야 한다.
이것을 지켜보던 가족이나 의원들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부자나 인삼은 열증에 사용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중장은 원례의 처방대로 해서 차갑게 식혀 마셨다. 뜨거운 기운의 약재를 다려서 차갑게 식혀서 마시면 자칫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중장은 땀이 많이 나더니 열이 떨어졌다.
원예는 곁에서 지켜보던 의원과 가족들에게 “이것은 바로 이열치열(以熱治熱)입니다. <내경>에서는 ‘열인열용(熱因熱用)’이라고 했는데, 열인열용은 이열치열과 같은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는 열이 나더라도 반드시 맥을 살펴서 속이 열(熱)한지 냉(冷)한 지를 살펴야 합니다. 만약 속이 냉한데도 불구하고 열을 식힌다고 찬 약을 쓰면 병세는 오히려 심해질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곁으로 열이 나면 보통 이한치열(以寒治熱)한다. 하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은 곁으로는 열이 나지만 속이 냉한 경우를 치료하는 치법으로 곁과 속이 다른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난치법이다. 따라서 이열치열을 잘못 활용하면 자칫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어느 날은 옆 마을에 사는 방씨(方氏)네 며느리가 학질을 앓았다. 그 며느리는 열이 후끈하고 나더니 이후 땀을 많이 흘려서 옷이 모두 젖었다. 그래서 하녀를 불러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게 누구 없느냐? 내 새 옷을 가져오도록 하거라~!!! 게 아무도 없느냐?”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며느리는 심하게 노(怒)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곧 혼궐(昏厥)하여 죽은 듯한 모습으로 기절했다. 일종의 히스테리 발작이었다. 다행스럽게 가족 중에 한 명이 쓰러진 며느리를 발견하고서는 집에 비상약으로 가지고 있던 소합향환(蘇合香丸)을 입에 흘려 넣어주자 깨어났다.
소합향환은 심적인 원인으로 인해 기절했을 때, 즉 기병(氣病)에 쓰는 명약이다. 중풍 응급약인 우황청심환과 대비되는 약이다.
그런데 며느리는 그 이후로 기운이 없어 하며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게다가 대청마루에 사람들의 발소리가 크게 나거나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번번이 처음처럼 혼절(昏絶)하였다.
원례는 진맥을 해 보더니 “맥이 몹시 허(虛)하여 무겁게 누르면 흩어지니, 이는 한다망양(汗多亡陽)이라는 것으로 <내경>의 내용과 꼭 들어맞습니다. 급히 보양(補陽), 보기(補氣)를 해야 합니다.”라 하였다.
한다망양(汗多亡陽)이란 땀을 많이 흘려서 양의 기운이 부족해지는 증을 말한다. 땀을 내면 안되는 상황에서 약을 잘못 써서 땀을 내거나, 땀을 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너무 과도하게 땀을 내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눈을 치켜뜨고 각궁반장을 일으키다가 실신하기도 한다.
원례는 급하게 황기(黃芪)와 인삼(人參)으로 날마다 보(補)해 주었다. 그러자 며느리는 식은땀이 멎고 놀라는 증상이 점차 줄어들더니 열흘 정도 되자 제반 증상이 사라졌다.
한번은 마을에 주중문(朱仲文)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름철에도 추위를 몹시 타서 항상 두툼한 솜옷을 껴입고, 음식은 반드시 뜨겁게 해야만 목구멍으로 넘어갔으며 미지근하면 구토를 하였다.
그런데 한 의원이 “씨암탉에 호초(胡椒)를 넣고 삶아 먹으면 냉이 사라질 것이요.”라고 알려주었다. 주중문은 의원이 알려준 방법대로 닭 한마리에 호초 한주먹을 넣어 끓여 하루에 세 번씩 먹었다. 그러나 병은 더욱 심해졌다.
이에 원례가 진찰을 해 보더니 “맥이 삭(數)하면서 대(大)하니 허약하지 않습니다. 고서에서도 ‘화(火)가 극심하면 이는 수(水)와 비슷하다’고 했으니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열이 심해지면 마치 추운 듯 오한(惡寒)이 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열이 극심한데 호초는 음경(陰經)의 화(火)를 발동시키고 닭고기는 담(痰)을 조장하므로 기혈의 순환이 막혀서 병을 심하게 만들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례는 추워 죽겠다는 주중문에게 오히려 속 열을 치는 대승기탕(大承氣湯)을 처방했다. 그랬더니 밤낮으로 20여 차례나 심하게 설사를 하더니 곧 솜옷이 반으로 줄었다. 이에 다시 황련도담탕(黃連導痰湯)에 죽력(竹瀝)을 더하여 다려 마시게 하자 남들처럼 얇은 여름옷을 입고도 편해졌다.
주중문이 보인 병증은 곁으로 보기에는 마치 냉증과 한증으로 보이지만, 맥은 빠르면서 큰 것을 보면 속은 열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병증은 진열가한증(眞熱假寒症)으로 속은 실제로 열(熱)한데 곁으로는 한증(寒症)이 나타난 것 뿐이다. 이때는 이한치한(以寒治寒)해야 한다. 만약 겉으로 나타나는 한증만 보고서 열약(熱藥)을 썼더라면 병세는 금세 활활 더 타올랐을 것이다. 약을 잘 쓰려면 외증(外證)보다 맥을 따라야 한다.
원례는 이처럼 <내경>과 같은 의서를 열심히 탐독해서 치료법의 원칙대로 처방을 해 왔다. 그러나 당시 일반 의원들은 방서에 나와 있는 처방만으로 써 내려갈 뿐이었다.
어느 날 한 의원이 “나는 그냥 방서에 나와 있는 처방만 써도 충분하고 남거늘 무엇하러 <내경>과 같은 경전을 공부한다는 말이요?”라고 반문했다.
원례는 탄식을 하면서 “의학에는 지극한 도(道)가 있습니다. 지금 한 의원이라도 옛날의 의도(醫道)에 능히 부합할 수 있다면 빈 골짜기의 발소리처럼 반가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의원이 다시 물었다. “옛날의 의에 도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원례는 “대게 의도(醫道)는 <내경>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속의 의원들은 의서를 읽지 않아 깊고 묘한 이치를 깊이 탐구할 줄은 전혀 모르니 안타깝습니다. 오직 방서(方書)에 나와 있는 처방만을 고집한다면 각주구검(刻舟求劍)하는 격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각주구검이라니요? 지금 날 보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이요?”하고 대들 듯이 물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옛날 초나라 사람이 강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칼을 물속에 떨어뜨렸는데, 그 위치를 뱃전에 표시해 놓고서 나중에 그 표시를 보고서 칼을 찾으려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배가 움직여서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표시한 곳은 이미 칼이 떨어진 곳이 아닌 것이다. 각주구검은 어리석음을 이르는 의미로 쓰인다.
원례는 차분하게 “지금의 사람들은 태고적 살았던 사람들과는 체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때와 환경도 다르고 먹는 것이 달라졌으니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한 처방만 고집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의 방서 그대로 처방을 하나 떠올리면 이미 환자는 저만치 도망가 있을 뿐입니다. 처방(處方)은 버리되 치법(治法)을 고수한다면 그 어떤 병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의원은 원례의 이야기를 듣고 깊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의자(醫者)는 의야(意也)라’하는 말을 오늘에서야 어떤 의미인 줄을 알게 되었다. 의원은 원례에게 고개를 숙이고 되돌아갔다.
원례는 후에 증치요결(証治要訣)을 지어 후세에 자신의 치료경험을 전했다.
* 제목의 ○○은 ‘치법’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부전록> 醫術名流列傳. 明. 戴思恭. 原禮生儒家, 習聞詩禮之訓, 惓惓有志於澤物, 乃徒步至烏陽, 從朱先生彥修學醫. 先生見其穎悟倍常, 傾心授之. 原禮自是識日廣, 學日篤, 出而治疾, 往往多奇驗. 予請得而詳道之. 原禮從叔仲章, 六月患大熱, 面赤口譫語, 身發紅斑, 他醫投以大承氣湯而熱愈極. 原禮脈之, 曰: 左右手皆浮虛無力, 非真熱也. 張子和云: 當解表而勿攻裏. 此證似之, 法當汗. 遂用附子, 乾薑, 人參, 白朮爲劑, 烹液冷飲之, 大汗而愈. 諸暨方氏子婦, 瘧後多汗, 呼媵人易衣不至, 怒形於色, 遂昏厥若死狀, 灌以蘇合香丸而甦. 自後聞人步之重, 鷄犬之聲, 輒厥逆如初. 原禮曰: 脈虛甚, 重取則散, 是謂汗多亡陽, 正合經意. 以黃芪, 人參日補之, 其驚漸減, 至浹旬而安. 松江朱仲文, 長夏畏寒, 身常挾重纊, 食飲必熱如火方下咽, 微溫則嘔. 他醫授以胡椒煮伏雌之法, 日啖鷄者三, 病愈亟. 原禮曰: 脈數而大, 且不弱. 劉守真云: 火極似水. 此之謂矣. 椒發陰經之火, 鷄能助痰, 只以益其病爾. 以大承氣湯下之, 晝夜行二十餘, 頓減纊之半; 復以黃連導痰湯益竹瀝飲之, 竟瘳. (의학명류열전, 명나라, 대사공 편. 원례는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시경과 예기의 가르침을 익숙히 들었으며 남에게 베푸는 뜻을 마음 깊이 간직하였다. 마침내 오양까지 걸어가서 주선생 언수에게 의학을 배웠다. 선생은 그가 남보다 배나 영특한 것을 알고 마음을 기울여 그에게 전수했다. 원례는 이때부터 식견이 날로 넓어지고 학문이 날로 두터워져, 나와서 병을 치료하면 종종 탁월한 효과를 보는 일이 많았다. 내가 상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원례의 종숙인 중장은 6월에 심하게 열이 나서 얼굴이 붉고 입으로는 헛소리를 했으며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는데, 다른 의사가 대승기탕을 투여하자 열이 더욱 극심해졌다. 원례는 진맥하더니 “양쪽 손의 맥이 모두 부허무력하니, 진열이 아닙니다. 장자화는 ‘마땅히 해표해야지, 공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 증이 그것과 비슷하니 마땅히 땀을 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곧 부자, 건강, 인삼, 백출로 약을 지어, 달인 탕액을 차갑게 식혀 마시게 하자 땀이 크게 나고는 나았다. 제기의 방씨네 며느리는 학질을 앓은 후에 땀을 많이 흘려서 하녀를 불러 옷을 갈아입으려 했으나 오지 않자 노한 기색이 드러나더니, 곧 혼궐하여 죽은 듯한 모습이 되었다가, 소합향환을 입에 흘려 넣어주자 깨어났다. 그 후로 사람들의 발소리가 크거나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번번이 처음처럼 궐역하였다. 원례는 “맥이 몹시 허하여 무겁게 누르면 흩어지니, 이는 한다망양이라는 것으로 경의 내용과 꼭 들어맞습니다.”라 하였다. 황기, 인삼으로 날마다 보하니 그 경증이 점점 줄어들고, 열흘이 되자 안정되었다. 송강의 주중문은 여름철에도 추위를 몹시 타서 몸에 항상 두툼한 솜옷을 껴입고, 음식은 반드시 불처럼 뜨거워야만 목구멍으로 넘어갔으며 미지근하면 구토를 하였다. 다른 의사가 씨암탉에 호초를 넣고 삶아 먹는 방법을 알려주어 날마다 세 번씩 닭을 먹었으나 병은 더욱 심해졌다. 원례는 “맥이 삭하면서 크니, 허약하지 않습니다. 유수진은 ‘화가 극심하면 수와 비슷하다’고 했으니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호초는 음경의 화를 발동시키고 닭고기는 담을 조장하므로 단지 병을 심하게 만들 뿐입니다.”라 하였다. 대승기탕으로 사하하여 밤낮으로 20여 차례나 설사를 하자 곧 솜옷이 반으로 줄었으며, 다시 황련도담탕에 죽력을 더하여 마시게 하자 완전히 나았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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