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무전 불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24 18:57

수정 2023.12.24 21:08

안승현 경제부장
안승현 경제부장
"아이 낳으면 돈 드립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의 화두는 이거다. 출산이 줄어 인구가 쪼그라들자, 여기저기서 출산·육아 지원금을 늘리겠다고 난리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80년대까지도 정부가 이런 구호를 내걸며 인구 억제정책을 폈다는 걸 떠올려 보면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을 정도다.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유일하게 1명 이하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런 상황을 반전시켜 보려고 그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저출생 대응정책은 서두에 언급했듯이 주로 "아이를 낳으면 돈을 준다, 많이 나으면 더 준다, 우리 지역에 와서 낳으면 더 많이 준다"와 같이 1차원적 접근방식이 주를 이뤘다. 얼마 전 인천시가 내놓은 아이가 크는 동안 1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선언 역시도 결국 금전지원이라는 프레임 안에 머물러 있지 않나. 어쨌든 국가나 지자체가 육아비용이라도 지원해주겠다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 원인을 봐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의 문제지만, 그보다 앞선 심각한 문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도 안하는데 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그 뒤에 따질 문제다.

통계청이 지난 8월에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를 보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36.4%로 절반 이하였다. 10년 전인 2012년까지만 해도 적어도 56.5%가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20.1%p나 떨어진 것이다. 이런 인식변화의 결과물도 얼마 전에 집계됐는데 지난해 결혼 5년차 이하의 신혼부부는 103만쌍인데, 역대 최저다.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5년 147만쌍에서 매년 5만쌍 이상 줄어들었다. 아마 올해는 100만쌍 이하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짐작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결혼을 하지 않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유럽과 달리 '비혼출산'을 금기시하는 한국에서는 결혼이 없으면 출생도 없는 게 당연하다. 청년들이 결혼을 멀리하는 이유는 대부분 짐작할 수 있듯이 경제적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일단 결혼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작년에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재미있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최근 2년간 신혼부부들의 결혼비용을 조사해 보니 대략 한쌍당 2억9000만원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 중 주택비용이 2억4000만원 정도인데 이걸 빼면 예식, 예단, 예물, 드레스, 메이크업 같은 사실상 일회성 비용에만 거의 5000만원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청년도약계좌에 월 70만원씩 5년간 저축한 돈을 결혼식 당일에 모두 날려 버리는 셈이다.

일본의 인구학자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얼마 전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 "지금 일본에선 수입이 적은 남성은 결혼 상대로 선택되지 않는다"며 "소득이 불안정한 남성을 지원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 없이는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사실은 한국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노동과 출산 의향의 동태적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소득 하위 10% 남성의 결혼비율은 8%, 그러나 상위 10%는 29%가 결혼경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한국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출산율이 뚝 떨어지자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감지했음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일시적 현상일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다. 지난 20년간의 인구정책도 결국 효과가 없었다면 이제는 전환이 필요하다.
'무전 불혼'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현상이고, 저출생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정책에는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다.
지금은 사회적 논의로 뜸을 들일 때가 아니라 진짜 뭔가를 내놔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ah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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