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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HMM 삼킨 하림…국민의 관심은 옳다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27 19:15

수정 2023.12.27 19:43

정상균 산업부 부장
정상균 산업부 부장


#파산=한진해운은 2017년 2월 17일 파산했다. 유동성 위기에 대주주의 무능, 청산가치가 높다는 금융논리에 한쪽 눈을 감아버린 정부의 실책이 낳은 총체적 결과였다. 국내 1위 해운사가 40년간 쌓아온 전 세계 영업망은 한순간 물거품이 됐다. 컨테이너 선박과 해외 알짜 항만터미널은 헐값에 팔렸다. 국적 해상운송능력은 반토막 났다. 사상 초유의 물류대란도 터졌다. 한진해운이 2016년 8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선박들은 항만에 억류됐다. 입항도 거부당해 하역조차 못했다.
국가 신용도는 추락했다. 정부는 뒷수습에 급급했다. 이런 와중에 홀로 남은 국적 해운사가 현대상선이다. 심각한 자본잠식 상태였다. 정부(산업은행)는 6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긴급 수혈(2016년)했다. 현대그룹은 벌크선단은 물론 현대증권까지 팔았으나 경영권을 끝내 되찾지 못했다. 산은 관리에 있는 이 회사가 이름을 바꾼(2020년 3월) 'HMM'이다.

#부활=놀란 건 정부였다. 2018년 유일한 국적선사가 돼버린 HMM을 글로벌 선사로 재건(해운재건 5개년 계획)하겠다며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해 전담기관 한국해양진흥공사도 만들었다. 글로벌 해운시장은 메이저들의 치킨게임에 인수합병, 파산이 이어진 대혼란기였다. 살아남으려면 덩치를 키워야 했다. 산은은 3조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등을 발행, 현금을 지원했다. 은행들은 선박금융을 다시 내줬다. HMM은 초대형 선박 20척을 발주하고 배도 더 빌렸다. 컨테이너 선박을 100여척으로 늘렸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 특수'가 찾아왔다. HMM은 지난해 사상 최대 10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국민(세금)들이 되살려낸 덕분이다. HMM은 컨테이너 선사 세계 8위(78만TEU)로 올라섰다. 현재 산은과 해진공이 HMM 지분(총 57.9%)을 양분하고 있다. 만기가 남아있는 영구채는 1조6800억원(2025년 4월까지 주식 전환)이다.

#매각=이달 초 HMM 인수(지분 57.9%) 우선협상대상자에 하림그룹이 선정됐다. 매각가격은 6조4000억원 규모. 자본력에서 보면 '새우(현금성자산 하림그룹 1조6000억원)가 고래(HMM 14조원)를 삼킨' 격이다. 해운업 불황의 초입(운임 하락-적자 전환)에서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자금 준비를 이중삼중으로 안 하고 (인수)하겠느냐"고 자신한다. 그러나 잡음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뭘까. 핵심은 △하림그룹의 자본조달능력 불확실성 △HMM 10조원 유보금 전용 가능성 △매각 과정상 불투명한 밀실행정 비판이다. 영구채 3년 전환 유예 등 하림그룹에 유리한 요구조건이 논란을 키웠다. 이는 하림의 진정성에 관한 의심으로 불거졌다. 급기야 HMM 노조는 "10조원의 유보금은 온전히 HMM 사업투자 확장에 쏟아부어야 할 국민자본"이라며 하림이 어떤 명분으로도 유용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런 논란에 하림그룹도 "미래 경쟁력을 위해 현금자산을 써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책임=국가는 정책적 오판으로 값비싼 비용을 치렀다. HMM은 혈세로 되살린 국적선사다. 부실해져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일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국민이 있겠는가. "승자의 저주도, 자금 우려도 없다"는 하림그룹은 HMM 인수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노력과 책임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현재 채권단과 HMM은 내년 1월 말을 시한으로 본계약 협상 중이다. '주주 간 계약 유효기간 5년 제한' 등 하림그룹 요구조건을 놓고 논란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계약 후 손댈 수 없는 불리한 조항, 졸속매각은 없어야 한다. 국민을 대신하는 산업은행 등 계약 주체들은 공적자금 기업의 매각 내용을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릴 책임이 있다.
HMM 매각을 지켜보는 국민의 관심은 옳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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