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가정 양립의 정착, 국가소멸 난제 풀 열쇠 [유연근무 신노동개혁 이끈다 (上)]

김현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07 18:40

수정 2024.01.07 18:40

"일·생활 균형 갖춰야 좋은 일자리" MZ세대 66% 이상 유연근무 선호
노동시장 유연화로 기업 경쟁력 ↑
정부 "노사 협력사례 확산할 것"
일·가정 양립의 정착, 국가소멸 난제 풀 열쇠 [유연근무 신노동개혁 이끈다 (上)]

"유연·재택·하이브리드 근무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노사 간 합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노동개혁 과제를 언급하면서 다양한 근무형태 도입 필요성을 제시해 주목된다. 지난해까지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동조합 불법행위 철퇴 등 주로 '노사법치'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근무형태를 통한 유연한 노동시장은 기업 투자를 늘리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노동의 형태 변화가 가져올 효과와 올바른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저출생·고령화가 한국의 국가소멸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이미 수년째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들어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가 저출생을 해소하기 위한 주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유연근무를 확대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육아를 위한 재택근무는 일·가정 양립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연초 발언은 노동개혁의 외연뿐만 아니라 곧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지지세력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유연근무에 대한 호응도가 높아서다.

■유연근무, 정부 정책 따라 탄력 받을까

디지털·정보통신 기술 발달과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근로시간 및 장소를 유연하게 운영하는 유연근무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유연근무 활용인원은 104만명(5.2%)에서 코로나19 확산 시기인 2021년 353만명(16.8%)까지 급증했다.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2022년 348만명(16.0%), 지난해 343만명(15.6%)으로 소폭 감소세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여전히 큰 폭으로 증가한 상태이다. 윤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따라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유연근무는 이미 근로자에게 일과 생활의 조화에 따른 만족감 상승, 기업에는 인재유치, 직원 사기진작, 생산성 향상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민의 가치관도 일 중심에서 일·생활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이는 2013년 일을 중시한다는 비중이 54.9%에서 지난해 34.5%로 하락한 반면 일·생활 균형을 중시한다는 비중은 같은 기간 33.4%에서 47.4%로 상승한 통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생활 균형과 가정생활을 우선시한다는 비중은 45%에서 65.5%로 뛰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들도 유연근무에 큰 호응을 보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22년 5월 실시한 'MZ세대가 생각하는 괜찮은 일자리 인식조사'에 따르면 일과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일자리(66.5%)를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는 일자리(43.3%)보다 좋은 일자리로 평가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MZ세대의 중소기업 취업 관련 데이터 수집·분석 결과'를 봐도 MZ세대 구직자의 관심도는 2019년 자기성장 가능성이 40.5%로 1위를 차지했지만 2022년에는 근무시간이 25.8%로 1위를 차지하는 등 선호도가 달라졌다.

■획일·경직적 근무 경쟁력 갖기 어려워

이처럼 워라밸에 대한 관심 증가와 MZ세대의 노동시장 편입이 확대되면서 유연근무는 다시 증가세가 회복되고 노동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의 비경제활동인구 조사를 봐도 취업 시 주요 고려사항 가운데 근무시간·장소 유연성 등 근무여건을 1위로 꼽은 인원은 73만8000명(31.5%)으로 수입·임금 수준을 우선시한 62만8000명(26.8%)보다 많다.

자율성·유연성에 기반한 근무환경은 근로자의 선택권을 높여 일·생활의 조화 속에 창의성을 발휘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워를 피하거나 자녀 등·하원 시간에 맞춰 출퇴근할 수 있게 해 부담을 덜어줌과 동시에 업무집중도를 높일 수 있고 초과근무 감축에도 효과적이다.

기업에는 단순 사내복지 개념에서 더 나아가 인재 확보, 애사심 고취 및 생산성 향상의 기회로 작용한다. 고용노동부의 2021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들은 일·생활 균형 관련 제도 시행이 근로자 및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으로 근로자 직장만족도 향상(88.2%), 우수인재 채용 확대(77.2%), 근로자 이직률 감소(84.5%), 기업 생산성 향상(84.2%) 등을 꼽았다.

특히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여성인력 활용과 출산율 제고를 동시에 달성하려면 부모가 출산·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유연근무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노동전문가는 "국민인식 및 인구구조 변화, 코로나 이후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더 이상 과거의 획일적·경직적인 근무형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율과 책임에 기반해 회사와 개인의 상황에 따른 유연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만족도와 업무효율 모두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선도적인 기업들은 유연근무제를 통해 매출이나 출산율 제고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장의 자율적 변화를 뒷받침하면서 영세기업 등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적극 지원, 현장 상황에 맞는 최적의 근무환경이 만들어지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신년사에서 "유연근무 등 일하는 방식도 혁신해 생산성 높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사가 협력하는 모범사례를 발굴하고 확산하겠다"고 강조했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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