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혼술·혼영의 시대를 넘어 핵개인의 시대가 예고된 가운데,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지속될까? 이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실주의 영화 거장' 켄 로치 감독(88)의 신작 '나의 올드 오크'(17일 개봉)를 보면서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초청된 이 영화는 노장의 마지막 장편영화이자 무려 15번째 경쟁 초청작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로치는 인권변호사 출신 폴 래버티 작가와 지난 30년간 노동, 빈곤 등 소외계층의 삶을 조망해왔다. 이 영화는 영국 북동부 폐광촌이 무대다. 폐광마을의 풍경은 '선진국 영국'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을씨년스럽다. 두 집 건너 빈집에 학교·교회마저 문 닫아 아이들은 방치돼 있다. 이곳에 어느 날 시리아 난민이 살러 온다. 영국은 지난 2016년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행을 택한 난민 일부를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소외계층이 사는 궁핍한 지역에 그들보다 사정이 더 딱한 국제적 약자를 밀어넣은 것이다.
로치 감독은 묻는다. "나눌 것이라곤 슬픔과 두려움뿐인 사람들 사이에서 우정이 싹틀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과 같다.
시작은 예상한 그대로다. "나도 살기 힘든데 왜 이들을 도와야 해" "네 나라로 꺼져" 등 혐오와 차별의 말과 행동이 쏟아진다. 그 속에서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 주인 TJ만은 친절을 베푼다. 실제로 북동부 더럼 주의 은퇴한 소방관 출신 배우가 연기했다. 그 역시 잃은 게 많지만 적어도 내 비루한 현실의 이유를 나보다 약한 사람 탓으로 돌리진 않는다. 그는 영민한 난민 소녀 야라와 우정을 나눈다.
개인적으로 TJ가 하나뿐인 가족인 반려견을 잃고 슬퍼할 때 야라가 자신의 엄마와 함께 음식을 들고 찾아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뱃속이 든든해진 TJ는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고 둘은 더욱 끈끈해진다. 두 사람은 마을의 차별받는 난민과 배곯는 현지 아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도 운영한다. 이는 1980년대 TJ의 부모세대가 정부의 국영탄광 폐광에 맞서 파업할 당시 '함께 나눠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가치의 실현이기도 하다.
일전에 만난 '호통판사' 천종호도 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위기청소년 지원센터 '만사소년'을 통해 매주 그들과 축구를 하고 밥을 먹는다는 그는 "일단 허기를 덜어야 교육이 가능하다"고 했다. 갈등과 혐오가 더 쉬운 세상, 밥 한끼만 나눠 먹어도 서로의 사정을 살펴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여기에 '기생충'에서 극 중 박명훈이 고 이선균에게 했던 명대사 "리스펙"을 더해본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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