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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또 승소 확정, "2018년 전까진 권리행사 장애사유 有"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1 10:57

수정 2024.01.11 11:27

대법원 2부와 3부에 이어 1부까지 피해자들 '손'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 가능성 확실"
대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유족들이 사실상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또다시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택악 대법관)는 11일 강제동원 피해자 고(故) A씨와 유족들이 옛 일본제철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B기업(상호변경 및 흡수합병)을 상대로 낸 1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2부와 3부에 이어 1부까지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소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도 사라지게 됐다. 쟁점은 일본 측이 주장하는 ‘소멸시효 완성’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였다.

A씨는 태평양 전쟁이 최고조에 달하기 직전인 1943년 3월 강제 동원 차출돼 옛 일본제철에서 월급을 받지 못한 채 1년여간 일한 뒤 다시 일본 군대에 배속됐다가 광복이 되자 귀국했다.
이후 A씨는 2012년 11월 사망했고, 배우자와 자녀들이 소송에 참여했다.

A씨와 같이 강제동원 또는 징용자라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일본에서 손해배상금과 미지급 임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이후 2005년 한국 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했고 1심과 2심은 피해자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데 반해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본 판결은 승인될 수 없으며 강제노동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며 파기 환송했다. 해당 소송은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하는 환송심 판결을 거쳐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확정됐다.

A씨 소송을 맡은 1심 법원은 "재판관할권은 대한민국 법원이 가지며, 옛 일본제철 불법행위로 A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만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또 옛 일본제철이 종전 후 해산됐으므로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현재 B회사는 청구권을 승계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옛 회사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을 실질적으로 물려받았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는 항변을 놓고는 “청구권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스스로 불법행위 및 배상책임을 존재를 부인한 이상 그 후 협정을 해석하면서 배상책임이 이행됐다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아울러 1심은 ‘강제징역 노동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2012년 이후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소멸됐고, 법이 정한 6개월 이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아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는 소멸됐다’는 B회사의 주장에 대해선 “증거와 변론 전체 취지를 종합하면 피해자들은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도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고, B회사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소 제기 기간은 B회사가 제시한 6개월이 아니라 민법에서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이며 이 기간에 피해자들은 소송을 걸었다고 1심은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피해자들이 2012년 대법원 판결 당사자가 아니었고, A씨 등 개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2심 역시 B회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다만 2심은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상고법원이 파기의 이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 판단에 기속된다”면서 피해자들의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는 2018년이 아닌 2012년 대법원 판결로 이미 해소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역시 일본 기업 B회사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들에게는 2018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일본기업에 대해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원심과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 해소 시기를 다르게 본 것이다.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적 견해를 최종적으로 명확하게 밝혔다”면서 “결국 이때 선고로 비로소 한국 내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가능성이 확실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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