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아이스크림은 1718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에 선보였으니 아이스께끼 역사도 100년이 넘었다. 신문에 아이스크림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매일신보 1921년 7월 4일자다. '나는 아이스크림 장사올시다'라는 제목의, 요즘으로 치면 극한직업 소개란이었다. 그 무렵에 이미 아이스크림 행상까지 있었다는 말이다. 아이스크림은 소프트크림 형태와 아이스께끼와 같은 단단한 빙과(하드), 셔벗 등으로 나뉘는데 행상이 말하는 아이스크림은 아이스께끼였을 것이다.
광복 후에도 가내공업 수준의 시설에서 아이스께끼를 만들었다. 아이스께끼를 현대적 시설에서 처음으로 대량생산한 기업이 삼강이다. '삼강하드'가 나온 것은 1962년 7월이었다. "완전무결한 위생시설을 갖춘 최신식 설비로 우리나라 최초로 하드 아이스크림 제조를 기업화하였습니다. 일종의 기호식품에 불과하였으나 삼강 하드 아이스크림은 우리의 식생활에 중요한 영양식품으로 등장하였습니다."(조선일보 1962년 8월 3일자·사진)
신문 1면에 실은 광고에서 삼강은 이처럼 하드를 빙과가 아닌 영양식품이라고 하면서 영양가가 우유의 3배라고 소개했다. 1960년대에 들어 낙농업 진흥정책으로 우유 생산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수요가 따라주지 않아 가공하지 않은 원유(原乳)를 서울 중랑천에 흘려버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스크림은 우유 소비책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어쨌든 아이스께끼의 현대화는 영양공급 역할도 했고, 식중독의 위험에서도 벗어나게 해주었다.
1958년 설립된 삼강의 첫 이름은 일동산업이었는데 창업자 이병각은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의 형이다. 일동은 1959년 12월 '삼강유지공업'으로 사명을 바꾸고 이듬해 3월 미국에서 기계설비를 들여와 국내 최초로 마가린을 생산했다. 이어 나온 '삼강하드'는 일본 유키지루시유업과 기술제휴로 만들었다.
삼강이라는 이름을 중장년층은 다 기억한다. 아이스크림 제조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만큼 여러 스테디셀러를 갖고 있다. 누구라도 한 번 이상은 먹었을 '쮸쮸바' '아맛나' '돼지바'를 판매한 기업이다. '빵빠레' '빠삐코' '죠스바' 등 지금은 어른이 되었을 어린이들이 좋아했던 여러 빙과류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제품들이다.
이병철의 다섯 살 위 형인 이병각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고향 경남 의령에서 마산으로 가 무학양조장을 경영하고 삼강하드를 창립한 사업가다. 동생만큼은 못해도 큰돈을 번 이병각은 고향인 장내마을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1971년 사망한 이병각을 기억하는 고향 주민들은 지난 2022년 그를 기리는 비석을 마을에 세우기도 했다.
이병각은 1966년 뜻하지 않게 국보급 문화재 장물취득으로 기소되면서 삼강의 경영권을 잃고 말았다. 이후 삼강은 흑자부도를 내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부라보콘'으로 대히트를 치던 해태제과를 따라잡으려 애를 태우던 롯데제과에 인수돼 롯데삼강으로 거듭났다. 아이스크림과 마가린 같은 유지제품을 주로 생산하던 롯데삼강은 파스퇴르유업, 롯데햄, 커피 원두, 간편식 등 다양한 식품업체들과 사업부문을 인수한 뒤 사명을 롯데푸드로 바꾸었다. 2022년 3월에는 롯데제과에 합병돼 롯데푸드는 없어졌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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