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배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까브리'와 함께 동해에서의 마지막 밤
동해시의 오래된 모텔에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야 했다. 비는 억수같이 내리는데 탄이는 차의 짐을 다시 정리하고 싶다며 동네를 돌다가 어떤 상가건물의 지붕이 있는 주차장을 찾아 밤늦게까지 차안의 짐들을 정리했다. 마지막까지 신경 쓸 것이 너무너무 많았다.
차를 배에 싣기 전 차안의 짐들을 세관에 거쳐야 하니 출항시간보다 몇시간 일찍 가야했다.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탄이 차를 몰고 세관에 들어갔다. 금지품목이며 이런저런 신경을 많이 써서 싸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차에 실은 물건에 문제가 되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기다리는 내내 걱정이 됐다.
한참 지나자 탄이 온다. 별다른 문제 없이 우리 까브리를 잘 접수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서 우리차를 찾을때까지 짧게는 열흘, 많이는 보름 이상도 걸린다고 한다. 그 동안 필요한 짐들을 따로 싼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한참 떨어진 승객용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로 걸어갔다. 해외에 갈때는 항상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었는데 항구에서 출국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를 블라디보스톡으로 데려다줄 배의 이름은 “이스턴 드림호”
그토록 꿈꾸었던 내차타고 세계여행의 시작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이제 이 배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서 서쪽끝까지 달려가는 거야~!"
긴 계단을 지나 배에 오르는데 캐리어가 무거워보였는지 외국인 선원인듯한 분이 내 캐리어를 번쩍 들어 위까지 옮겨주신다. 너무 고마워 감사인사를 하고싶었는데 짐을 받고 정신을 차리자 벌써 사라지고 없다. 조건 없는 친절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부웅~” 뱃고동 소리가 출항을 알렸다. 갑판에서 동해항구를 내려다보니 비로소 ’아, 진짜 드디어 떠나는구나‘ 실감이 났다. 어제까지 장대비를 퍼붓던 하늘은 구름사이로 찬란하게 햇살이 빛난다. 몇 달간 계속 여행을 영영 못하게 되는게 아닐까 걱정하고 쫄아들었던 마음이 확 날아가는듯 했다. 불안과 긴장이 기대와 설레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스턴 드림호의 24시간
무척 큰 배였다. 배 여기저기를 탐험하는데에도 꽤 걸렸다. 계단으로 배의 여러층을 오르내릴 수 있었는데 우리 선실은 아래쪽에 있었다. 배위 갑판에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면세점과 상점도 있었는데 상점은 물건이 거의 없었고 운영시간도 잠깐씩이어서 뭘 사기가 힘들었고 면세점은 아예 닫혀있었다. 코로나 전에는 운영했던 듯.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는 24시간이 걸린다.
배 가운데 층에 넓게 의자들이 줄지어있는 객실도 있지만 승객 한명당 침상이 하나씩 주어진다. 내 침상 건너편의 러시아 아저씨는 키가 커서 침상이 불편하다고 툴툴대는 듯하다.
배가 오래되어 아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에어컨 빵빵하게 잘 나오고 선실마다 쓸만한 화장실도 딸려있어 필요한 시설은 웬만큼 잘 갖추어진 듯 했다. 지내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한끼를 사먹었는데 음식은 가격에 비해 그저 그랬지만 햇빛이 반짝이는 푸른 바다에 파도가 넘실대는 풍경을 보며 식사를 하다니 세상의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보기 힘든 멋진 뷰라는 생각에 매우 행복했다.
배가 매우 커서 흔들림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은 울렁대는 느낌이 있었는데 나는 오히려 좋았다. 자려고 눈을 감고 누우니 마치 테마파크의 놀이기구를 탄듯한 느낌에 ’아이 재미있어~‘하며 잘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탄이 노란 살구를 불쑥 내민다. “오다 줏었어? 귀한 살구가 어디서 났대?”
탄이 어제밤 잠이 안와 배를 돌아다니다가 아주머니 두어분을 만났는데 그분들의 선실이 너무 더워 잠을 못주무신다고 힘들어하시길래 우리 선실에 빈 침상이 있다고 오시라고 알려드렸더니 고맙다고 주셨단다. 이 사람 곁에 있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참 남 돕기에 열심인 사람이다.
망망대해 바다밖에 안보이다가 점점 육지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웅성댄다. 우리도 배위로 올라갔다.
“오 저게 러시아 땅인가!” 그토록 오고싶었던 블라디보스톡. 드디어 왔다. 너무너무 반갑고 마냥 좋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좋아해버렸다.
배가 항구에 닿으려는 것을 보고 우리는 급히 선실로 돌아가서 짐을 챙겨 바로 내릴 준비를 했다. 외부계단으로 나가는 통로에 사람들이 짐과 함께 한가득 줄을 섰다.
배가 항구에 도착했으니 바로 내릴 거라 생각했었는데 선원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만하며 승객들을 내려줄 기색이 없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안내방송조차 없다. 사람들은 점점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며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발이 묶여 몇 년간 가족을 못본 러시아분들이 꽤 계셨고 우리도 마중나온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걱정되어 빨리 나가야 하는데 하며 어쩔줄을 몰랐다.
★따귀소리 '짝~'.. 러시아 남자들의 다툼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도록 도통 내려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내 앞에서 러시아 남자들이 말다툼을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눈 앞에서 “짝~!”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따귀를 갈기는 장면을 보고 얼어버렸다. 평소 러시아 사람들은 매우 공격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이제 무슨 큰 일이 벌어지겠구나 끔찍한 상상을 하며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맞은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사태가 진정되었다.
주변에 러시아어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맞은 사람이 취해서 주정하는 것을 형님인 듯한 사람이 때리고 조용히 시킨거라고 얘기해주신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좀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이야기하고 웅성대기를 계속하다 거의 3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가로막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지 느린 속도로 나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배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가 세관을 통과하던 중 우리짐도 많은데 그 와중에 탄은 또 다른 분의 엄청난 짐을 도와드리느라 고생이다.
드디어 러시아에 입국을 했다. 우리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장장 3시간여를 캄캄한 항구에서 기다려주셨다. 죄송해서 어쩔줄을 몰랐는데 웃는 얼굴로 그저 반겨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우리가 코로나 이후 첫 손님이라고 한다.
몇 년을 다니지 않던 배가 다시 들어오니 세관이며 이쪽 행정 일하는 쪽에서도 무언가 문제가 많았나보다. 감사한 사장님 덕에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안전하게 숙소에 갈 수 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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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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