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의 톡톡 이 와인
[파이낸셜뉴스] ‘대단한 야망가 아버지와 천재적 감각의 아들이 만든 와인’.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칠레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와인 ‘비네도 채드윅(Vinedo Chadwick)’ 얘기다. 비네도 채드윅은 칠레 와인 명가 에라주리즈(Errazuriz)의 오너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이 아버지 알폰소 채드윅 에라주리즈(Alfonso Chadwick Errazuriz)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헌정하는 와인이다.
안데스 산맥 산자락 아래 해발 670m 마이포 밸리(Maipo Valley) 푸엔테 알토에 위치한 15ha 규모의 이 빈야드는 칠레 역사상 최고의 폴로 선수로 평가받는 알폰소 채드윅의 개인 폴로 경기장이었다. 그러나 1992년 그의 아들 에두아르도 채드윅이 아버지의 폴로 경기장을 갈아엎고 포도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칠레 최고 부자 중 하나인 에두아르도는 주변의 다른 땅도 많았는데 왜 자신의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던 폴로 경기장을 갈아엎고 빈야드로 만들었을까. 그 땅이 가진 독특한 떼루아 때문이다. 비네도 채드윅 빈야드는 다른 곳과 전혀 다른 토질을 가지고 있다. 상층부만 보면 언뜻 점토질을 가진 땅으로 보이지만 60~70cm만 파고 들어가도 온통 자갈로 가득한 충적토가 있다. 에두아르도는 까베르네 소비뇽을 키우기에 최적의 토양임을 정확하게 알아본 것이었다.
마이포 밸리는 일교차가 워낙 커 최고의 포도가 나올 수 있는 곳이지만 일년 강수량이 200~300mm에 불과할 정도로 너무 적다는 게 단점이다. 그러나 비네도 채드윅 빈야드를 덮고 있는 점토는 수분을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어 포도가 과도한 가뭄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또 밑에 위치한 자갈땅은 까베르네 소비뇽에 우아한 질감을 선사한다.
1945년 칠레 마이포 밸리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대규모 포도밭을 조성한 어버지 알폰소와 최고 품질의 와인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폴로 경기장까지 갈아엎은 아들 에두아르도의 열정이 만들어낸 와인은 어떤 맛일까.
와인통합마케팅사 ‘와인인(WINEIN)’이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레스토랑 주은에서 일부 전문가를 대상으로 세계 최정상급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 중 하나로 꼽히는 비네도 채드윅을 빈티지별로 경험하는 ‘버터컬 테이스팅’ 행사를 열었다. 이날 나온 비네도 채드윅은 2021년, 2020년, 2016년, 2014년, 2010년, 2000년 등 총 6개의 빈티지. 시음에 앞서 3시간 브리딩을 거친 후 서빙된 이 와인들은 하나같이 아주 실키하고 살집이 좋은 질감에 검은색 과실향이 출렁대는 풀바디 와인의 진수를 보여줬다.
비네도 채드윅은 오는 5월 중 서울에서 세계 최고의 와인들과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품질을 겨루는 이른바 ‘베를린 테이스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접근성 좋은 2021..블라인드 테스트하면 빈티지 못맞출듯
먼저 2021 빈티지를 경험했다. 숙성 잠재력이 족히 20년 이상인 와인이지만 불과 2년여가 지났는데도 이 와인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접근성이 좋다. 잔을 가까이 하자마자 좋은 산도를 가진 검은색 과실향이 제일 먼저 다가온다. 잔을 휘돌릴수록 뿜어져 나오는 흑연, 삼나무 향도 아주 매력적이다. 입에 살짝 흘려보면 신선한 과즙과 기분좋은 산도가 반긴다. 특히 잘게 쪼개지고 둥글려진 얇은 타닌은 이 와인의 나이를 짐작 못하게 만든다. 타닌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집을 키운다. 질감은 미디어 플러스 또는 풀바디 수준이다. 피니시는 제법 길게 느껴지며 미디엄 하이 수준의 산도와 초콜릿향, 커피향이 이어진다.
2020빈티지는 트러플 향이 묻어있는 상당히 높은 산도가 특징이다. 잔에서는 피어오르는 검은 과실향도 더 강해졌다. 입에 살짝 흘려보면 뛰어난 산도와 트러플 향, 초콜릿 향이 제일 먼저 느껴진다. 그러나 과실향은 의외로 잠겨있다. 타닌도 2021빈티지와 달리 몽글몽글 뭉쳐있다. 피니시는 타닌에 묻은 초콜릿 향으로 마무리된다.
■2014 빈티지, 진짜 가벼운 바디에 복합적인 향..산도는 왜 이렇게 우아할까
7년 여가 지난 2016 빈티지는 확실히 자신만의 개성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잔을 휘돌리면 거름망을 한번 거친듯 맑아진 과실향은 중간중간 붉은색이다. 후추 등 매콤한 향과 트러플 향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입에 조금 넣으면 산도가 굉장히 좋다. 찌를듯한 신맛이 아닌 아주 우아한 산도다. 타닌은 중간 정도의 살집이며 타닌에도 신맛이 묻어있다. 피니시는 초콜릿 등 복합적인 향과 붉은 과실향에 이어 마지막엔 강력한 신맛이 턱 주변을 계속 자극한다.
2014빈티지는 비네도 채드윅에 있어 전설의 빈티지로 평가받는다. 칠레 마이포밸리 자체 빈티지도 좋았지만 전설의 빈티지로 평가받는 비네도 채드윅 2014는 어떨까. 잔을 가까이 하면 먼 곳에서 올라오는 진한 카시스 열매가 제일 먼저 반긴다. 잘익은 검은 과실을 졸여냈지만 신선한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아주 깊은 곳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그런 향이다. 트러플 향이 묻은 신맛과 붉은색 과실향도 느껴진다. 입속에서는 가벼운 질감이 먼저 와인들보다 몸집을 더 덜어냈다. 미디엄바디 수준으로 미네랄 느낌까지 들어온다. 타닌은 아주 둥글려저 흔적만 살짝살짝 느껴진다. 침샘을 자극하는 신맛은 가장 압도적이다. 피니시는 입속에 얇게 깔리는 타닌에서 올라오는 복합적인 과실향과 둥둥 뜨는 우아한 산도와 감칠맛이 진짜 길게 이어진다. 전설의 빈티지에 빚어진 비네도 채드윅은 단연 최고의 모습을 보인다.
■2010빈티지는 최고의 숙성기에 오른 다채로운 모습 인상적
2010 빈티지는 100% 프렌치 오크를 사용하지 않은 첫 와인이다. 비네도 채드윅은 이 빈티지부터 프렌치 오크 비율을 점차 줄여가면서 현재는 75~80% 수준까지 낮췄다. 그만큼 포도가 가진 1차 향을 더 집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잔을 가까이 가져가면 좋은 산도를 기반으로 한 향과 트러플 향이 제일 먼저 반긴다. 과실향은 검은 색과 붉은 색이 섞여있다. 잔을 기울이면 혀에 떨어지는 질감은 미디엄플러스로 결코 무겁지 않다. 타닌은 얇게 깔리며 입술과 치아에 살짝 살짝 끼는 정도다. 좋은 산도와 함께 삼나무와 붉은 과실 위주의 향이 느껴진다. 이어 검은 과실향 혀를 무겁게 내리누르며 피니시가 이어진다. 굉장히 다채로운 모습의 빈티지다.
20년이 넘게 지난 비네도 채드윅 2000 빈티지는 이전 와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잔에서 올라오는 향은 세련된 과실향과 약간의 브렛향이다. 입에 흘려보면 과실 아로마는 검은색인데 무게감은 떨어진다. 숙성이 거의 끝에 달한 와인 같은 느낌을 준다. 타닌은 여전히 탄탄히 골격을 이루지만 산도가 살짝 뭉그러져 있다. 타닌에는 약간 단맛이 느껴지며 야생 동물 향도 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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