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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거울에 비친'억압된 자아’…나르시시즘의 변주 [Weekend 문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9 04:00

수정 2024.01.19 04:00

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16)백남준 잇는 비디오 아트 거장 토니 아워슬러

대중문화의 일방적인 소통에 반기
기술로 더욱 자유로워진 공간에서
관객은 시공간을 넘어 초월적 경험
"나의 작품에선 관객도 작품의 일부
공간적 관계 속 새로운 조합 만들고 싶어"
토니 아워슬러 'Pink Mirror' /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토니 아워슬러 'Pink Mirror' /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토니 아워슬러 'Bound Interrupter' /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토니 아워슬러 'Bound Interrupter' /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토니 아워슬러(67)의 작품은 기괴하면서도 유머러스해서 현대미술치고는 대중적 인기가 높다. 하지만 단순히 눈에 띄기 위해 엽기적 코드를 남발하는 것은 아니다.

백남준으로부터 시작된 비디오 아트의 한 장에 이름을 올린 그는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 미술작품이 가지는 한계를 퍼포먼스가 포함된 영상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영상은 시간의 축에 따라 서사가 가능하므로 통상적인 미술작품보다는 대중적 소통에 용이하다. 일반적으로 영상의 범람은 문자는 물론 회화와 조각 같은 기존 미술의 형식을 무력하게 했다.


하나의 시각적 형식이 지배함으로서 관객은 더 지루해졌고 더 많은 선정성이 요구됐으며, 영상에 무엇이 담기든 무감각하게 소비됐다. 영상이란 대개 제작자가 정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간다.

작가는 '사랑의 묘약'(2012년, 313아트프로젝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열린 첫 개인전 당시 인터뷰에서 "영화나 다른 대중문화에서 관객들은 작품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형적인 관계에 있지만, 나의 작품에선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상호적인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영상을 손수 제작한 입체에 투사한다. 여러 형식이 조합되면 난삽 또는 난해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읽기가 아닌 쓰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빈칸이 필요하다. 롤랑 바르트를 비롯한 현대의 사상가들은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대중문화가 코드를 읽고 끝나는 소비적 방식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토니 아워슬러가 일종의 스크린을 입체적으로 만든 후 영상을 투사할 때, 영상은 단지 시간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조합을 만든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적극적으로 편집되는 것이다. 관객의 눈은 하나의 의미로 귀결될 하나의 초점에 집중되기보다는, 그가 연출한 여러 항목을 종횡무진 횡단하게 된다. 그것은 깊이보다는 표면들의 여정이다. 관객은 가까이서 멀리서, 그리고 속속들이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작품의 핵심 효과는 영상의 몫이 크지만, 어둠 속 넓게 펼쳐진 스크린이 세계의 전부인 양 착각을 유도하지 않는다. 그는 캔버스라는 전통적인 회화적 평면 뒤에다가도 영상 장치를 달아 그림 속에 움직임을 담기도 한다. 영상장치들은 더욱 소형으로 발전하기에 초창기 비디오 아트에서 종종 있는 기계장치의 이물감도 상당 부분 극복된다. 1980년대부터 백남준과 친구였던 그는 아이패드나 아이팟 같이 이후에 등장한 기기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백남준 시대와 달리 현재는 미디어와 수용자가 쌍방향 관계임을 강조한다. 그는 다양한 이미지 중에서 얼굴을 자주 선택한다. 가장 작은 면적에 배치된 이목구비에의 변화에 대해 인간은 매우 민감하다. 사회적 소통의 근간은 바로 얼굴이기 때문이다. 비디오를 포함한 영상기기들 또한 전자거울의 연장이다.

하지만 거울의 한계를 전자거울도 공유한다. 비디오 아트 초창기부터 즉각적으로 몸을 반사하는 속성이 야기하는 나르시시즘적 특징이 지적됐다. 현대의 심리학 이론이 주장하듯 거울에는 사회적 요구가 담긴다. 거울을 보며 반듯한 나를 다짐할 때 누군가는 그 과정을 억압적이라고, 누군가는 사회적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거울은 자아의 상상에 의해 분열된 몸을 조합할 따름이다. 대상을 곧바로 반영하거나 재현할 것이라 믿어졌던 거울과 거울의 변주들에 대해 현대미술가는 도전한다.
그가 보여주는 분열적 몸들은 비디오라는 전자거울 또한 이미 금이 가있음을 알려준다. 세계를 더 자세하게 재현하려는 기술의 추세가 있지만, 현대예술이 재현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 때, 재현의 체계에 내재한 균열의 틈은 더욱 벌려진다.
토니 아워슬러는 그 간극에서 유희한다.

이선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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