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마무리 지을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결국 사람 나름이지~!" 가 있다. 누가 어떤 의도로 제도를 운영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남녀노소, 직업, 배경 등을 가지고 일반화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 나름"은 어떤 양상일까. 19세기 말 미국 경제를 배경으로 생긴 제도학파 경제학에서 힌트를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창조본능"과 "약탈본능"이다.
인간에게는 최선을 다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창조본능이 있는가 하면, 남이 창조한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지배하려는 약탈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은 남북전쟁과 전후복구, 대륙횡단철도 건설, 대기업의 출현, 독과점 폐해와 반독과점법 실시, 신흥부호들의 과시소비, 이에 대한 대중의 혐오 등이 숨 가쁘게 전개되던 때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JP모건, 밴더빌트, 록펠러, 카네기 등의 거대 기업그룹도 이때 형성되었다. 제도학파는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당시 미국 사회에 인식의 틀을 제공했는데, 이윤극대화 본능보다는 창조본능과 약탈본능에서 인간이나 기업이 보이는 의욕의 원천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연구의 범위도 시장 밖에 있는 국회, 법률, 규제, 협동조합, 재단 등의 단체가 자기 권력의 확대를 추구하며 자원배분을 꾀하는 것에 주목했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 덕분에 인간사에 갈등, 불확실성, 낭비, 왜곡을 직접 논할 수 있었다.
인류 역사를 길게 늘어뜨려서 보면 적을 말살시키고 재산을 빼앗아온 역사가 사유재산권이 보호된 역사보다 길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유재산권과 자유가 지극히 문명화된 가치 있는 것임을 절감하게 한다. 동시에 약탈본능이 인간성에 있는 한 다른 형태로 현대사회에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주가조작, 펀드사기, 코인사태도 약탈본능이다. 창조·생산의 과정 없이 가치가 없는데 있는 것처럼 포장해 유통시키는 경제범죄의 본질이 금융시장에 투영된 모습이다. 바다이야기 사태, 부산저축은행 사태, 사모펀드 사태,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 등 2000년 이후 많은 경제사건들이 그랬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를 우호적 시선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기업에 대한 약탈본능, 국민의 노후자금에 대한 약탈본능에 악용되어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은 사실 지식을 정리하고 높은 차원의 해결책을 제공하는 창조본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문성으로 신뢰받아야 할 서울대병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사건에 대해 자세한 브리핑을 하지 못하고, 정치인에 대한 재판에 말려들기 싫다며 부장판사가 사표를 내고, 경찰은 칼인지 나뭇가지인지, 피의자와 그의 변명문, 차량을 제공한 조력자 등을 시원하게 발표하지 않는 일련의 모습들은 전문가가 전문가답지 못하고 약탈본능과 타협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문명사회의 기본이 되어야 할 법치주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 우려스럽다.
법치가 훼손되고 있으니 검사 출신들이 국가기관 공직 여러 곳에서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경제의 자원배분은 시장 밖의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국회가 통과시키는 법률상의 권리일 수도 있고, 어떤 중요한 위원회의 결정일 수도 있는 등 형태는 다양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명분은 그럴듯하나 인간들의 약탈본능을 통제하지 못하고 훼손시키는 제도인지, 각자의 창조본능을 발휘케 하는 그나마 공정한 제도인지에 대한 판단력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인간과 제도의 현실을 의심해야 2022년 국부의 크기 2경380조원이 넘는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너무 바쁘다.
이종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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