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친구 박모씨였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원래라면 수감돼 있어야 할 박씨였기 때문이다. 박씨는 사기죄를 저질러 체포된 상태였다.
박씨는 수감된 지 하루 만에 '갈비뼈가 아프다'는 꾀병을 부려 병원 치료를 받으러 나왔다고 했다. 이후 MRI 촬영을 위해 수갑이 잠시 풀린 순간을 틈타 도망쳤다.
"여보세요? 나야. 지금 병원 왔다가 탈출했는데 잠깐 만나줄 수 있어?"
감방 생활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였을까. 전화를 받은 윤모씨(30)는 곧장 박씨의 제안에 응했다. 윤씨는 2019년 5월 폭력행위 등 처벌(단체등의구성활동)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고 출소한 뒤였다.
윤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포르쉐 승용차를 끌고 박씨가 있는 서울 구로구의 대학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둘의 만남이 성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5분.
박씨를 포르쉐에 태운 윤씨는 자신의 집 지하주차장에 들러 에쿠스 승용차로 갈아탔다. 이후 이들은 서울 곳곳을 누비며 6시간 가량 '금지된 자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수사망이 좁혀오자 윤씨는 이날 오후 6시30분쯤 동작구에 있는 한 버스터미널에 박씨를 내려줬다. 박씨에게 도주 자금으로 현금 10만1천원을 건네주기도 했다.
윤씨는 지난 12일 범인은닉 혐의로 징역 6월을 선고 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정유미 판사는 "범인 은닉은 국가의 사법 기능을 적극적으로 저해하는 범죄로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누범기간 중 범행한 점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윤씨는 재판에서 "죄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범행이 허용된다고 잘못 인식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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