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일 정상회담 이후 관계 정상화 가속화
지난 29일 중국 베이징 중심부에 위치한 중국 외교부 국제프레스센터. 이날 열린 정례외신기자회견은 소통을 가속화하고 있는 중일과 여전히 냉랭한 한중 관계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날 중국 외교부의 왕원빈 대변인은 일본인에 대한 단기비자 면제에 대해 질문을 받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라고 답했다. 반면, 한중 관계와 관련해서는 "한·중 외교장관 간 통화가 언제쯤 이뤄지냐"는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한중과 한일 관계의 진전 수준이 어떻게 다른지 가늠하게 하는 질문들이었다.
지난 10일 취임한 조태열 외교장관은 미국 등 주요국 외교 수장들과는 진작 통화를 마쳤다. 그러나 중국 측 카운터 파트인 왕이 외교부장과는 20일이 다 되도록 통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을 겸하는 왕 부장의 바쁜 해외 일정으로 통화가 늦어지는 측면은 있다. 그러나 한중 외교장관의 '첫 인사'가 20일 가까이 성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일본제철 회장 등 180명으로 구성된 경제계 고위 대표단이 지난 25일 리창 총리 등 중국 측 주요 인사들을 만나 자신들의 입장을 전하고 소통하는 자리가 있었다. 일본 경제계 대표단의 중국 방문은 2019년 이후 약 4년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일본산 수산물 금수조치 철회, 일본인 대상 단기 체류 비자 면제 제도 재개, 반간첩법에 대한 우려 등 일본 재계의 다양한 입장을 중국 최고 지도부에 전했다.
대사관 차원의 양국 활동도 차이가 크다. 지난해 12월 부임한 가나스기 겐지 일본 대사는 차기 외교부장으로 확실한 류젠차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을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가나스기 대사는 이 자리에서 의원 교류를 포함한 일중간의 모든 분야에서 의사소통을 강화해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류 부장도 일본 여야 및 각계 인사들과의 교류를 강화하겠다고 화답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가나스기의 전임 다루미 히데오 전 대사도 지난해 11월 류 부장과 만나 양국 관계의 개선을 위한 현안을 협의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중일 관계를 건전하고 안정된 발전 궤도로 되돌리고 싶다"는 류 부장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반면, 재임 1년 반을 맞는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중국 외교부나 대외연락부의 고위급 관계자 등과 양자 회담 등 의미있는 협의를 진행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일본의 각 정당 대표 등의 방문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이후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에 이어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가 중국을 방문했다.
사민당의 후쿠시마 당수는 19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왕후닌 정치협상회의 주석과 회담했다. 왕 주석은 권력 서열 4위이지만, 시진핑 주석의 귀를 잡고 있는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책사로 알려져 있다.
일본측은 경제계 인사나 정당 대표나 할 것 없이 일본 경제계와 국민들의 아쉬운 점과 요구를 전하고 있다. 중국에 구속돼 있는 일본인들의 조기 석방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수산물 금수 해제를 중국 최고 지도부의 면전에서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과 중국은 관계 정상화의 가닥을 잡고, 전방위적인 경제협력 강화와 교류 사업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중이 관계 악화 방지에 합의한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일도 정상회담을 열고, 실리와 실익을 위한 관계 정상화의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상무부와 일본 경제산업성도 지난 17일 도쿄에서 국장급 수출 관리 대화를 갖고 반도체 재료인 갈륨 등에 대한 중국의 수출 규제 강화 등을 논의했다. 중국 측은 수출 관리의 투명성을 높여 정상적인 무역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데 합의, 원자재 수출 규제에 촉각이 곤두서 있는 일본 측에 선물을 안겨주며 안심시켰다. 두 부처는 지속적으로 협의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한중이 어정쩡한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을 때, 일본과 중국은 정상에서부터 대사와 장관, 정당 대표와 경제계, 정부 국장급 실무협의까지 실리와 동반상승을 위한 관계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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