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수십조원 감소는 큰 사건이다. 그럼에도 국민 체감도는 높지 않다. 세수가 준다고 정부가 마이너스 예산을 편성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선거 표심을 건드릴 수 있고 복지지출 등 의무지출은 줄이기 어려워서다. 실제 올해 예산은 세수의 큰 폭 감소 예상에도 전년 대비 2.8% 늘어난 656조3000억원으로 확정됐다. 증세도 정부가 쉽게 내놓지 못할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 마이너스 수십조원 세수에는 그러려니 하는 월급쟁이 서민들이지만 세금을 더 걷는 것엔 무엇보다 예민해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거위털 뽑기' 때 나온 반발이 실례다. 당시 조 수석은 세법개정안을 설명하면서 "세금을 걷는 것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사실상 증세안이었다. 여론은 들끓었고, 조 수석은 '사퇴 논란'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역대급 세수오차는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다. 나라살림의 기본은 세수여서다. 세금이 더 걷히면 더 걷힌 대로, 덜 걷히면 덜 걷힌 대로 효율적으로 살림을 살 수 없다. 부작용도 당연히 크다. 우선 재정을 통한 경기대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히면 정부는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을 의도적으로 줄이면 재정의 경기대응 여력은 약화된다. 민생도 직격탄을 맞는다.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혀도 문제다. 초과세수는 정부가 재정을 더 쓰게 만드는 요인이다.
임기 중 10차례, 총 151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문재인 정부가 선례다. 2021년과 2022년 세수는 예산 대비 각각 61조4000억원, 52조5000억원이 더 걷혔다. 더 걷힌 세수를 믿고 재정을 계획보다 확장적으로 운용하면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최종 부담은 결국 납세자인 국민 전체의 몫인 셈이다.
세수추계는 어렵다. 경제전망치를 전제로 다시 해야 하는 작업이다. 경제전망 예측기관들의 성장률 전망도 틀리는 사례가 숱하다. 여기서 몇 단계 더 나가는 것인데 어려움을 말해 뭐하겠는가. 그럼에도 재정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서는 세수추계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대규모 세수오차가 발생했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예산은 세수전망에 근거해 짜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세수추계 시스템은 예산에 맞춰 세수를 전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무적 판단이 개입되면 주객이 전도된다. 만약 정부가 확장재정정책 추진 유혹에 빠지면 경제성장률 등 거시변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 후 세수를 추계토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가 아닌 독립적 추계기관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는 세수를 총괄하는 세제실과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는 예산실이 기획재정부라는 한 몸으로 묶여 있다. 독립성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구조다. '예산 방파제' 제도 도입은 중장기과제다. 2021년, 2022년처럼 수십조원의 세수가 더 들어왔을 때는 이를 다시 예산으로 편성해 뿌리기보다는 기업의 현금성 자산처럼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 세수가 더 들어올 때는 비축하고, 덜 들어올 때는 이를 활용해 경제운용 부담을 줄여야 한다.
우리말에 '삼세번'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다. 세번 연속 큰 세수오차를 낸 지금이 게임 룰을 고칠 적기다. 세수독립, 다시 말해 세수추계의 독립은 쉬운 길이 아니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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