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독백습(百讀百習). 불가사의할 정도의 업적을 이루며 천재라고 불린 세종대왕의 제1 습관입니다. 이는 백 번 읽고 백 번 쓴다는 대왕의 책 읽는 방법이었습니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읽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강조했던 그는 여러 권의 책보다 한 권의 책을 깊이 보길 권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읽는 것과 함께 ‘쓰기’를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조선 시대 당시에 불편한 붓으로 글을 베껴 쓰기란 여간 수월치 않았을 텐데도 말이지요.
필사, 즉 베껴 쓰기라고 해서 마냥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대 수도원에서는 고행의 과정으로 성서 필사가 있었을 정도였다네요. 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참회 방법으로 필사를 간주하고 그 분량으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계산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불경 필사를 공덕의 일종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필사하는 과정은 마치 명상과 같은 몰입을 선사합니다. 좋은 문장을 필사하면 그 문장과 의미가 오롯이 내 영혼에 차곡차곡 새겨집니다. 요새 유행하는 긍정 확언을 말로 내뱉는 것보다 더 강력히 작용하여 체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필사는 과거부터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비결로 손꼽혀왔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인 ‘감택’은 필사하는 일이 직업이었는데, 필사하는 만큼 지식을 깊이 습득하여 학문이 능통해져서 후일 손권에게 등용되기도 합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키케로, 아이작 뉴턴, 마리 퀴리, 윈스턴 처칠 등이 필사 습관을 지닌 대표적인 위인으로 꼽힙니다.
최근 특히 주목받는 필사의 효과로는 ‘도파민 디톡스’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숏폼 콘텐츠와 미디어의 범람 등 인위적인 이유로 도파민 과다 분비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죠. 사실 도파민은 좋은 호르몬이지만, 노력 없이 발생하는 도파민 효과로 인해 충동성이 높아지거나 집중력 하락 등의 상황이 초래돼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증세가 심해지면 환각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다양한 도파민 디톡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실천법 중 하나가 바로 필사입니다. 필사는 마라탕과 탕후루 같이 도파민을 자극하는 콘텐츠 사이에서 힘을 빼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공감하는 글을 베껴 쓰거나 새로운 삶의 태도를 이해하는 과정은 종교에서의 자기 수행과 결을 같이하는 수행과도 같습니다.
'성공하는 리더들의 영어 필사 100일의 기적'은 필사를 통해 하루 10분씩 100일 동안 실천할 수 있는 지혜의 공유를 위해 기획됐습니다. 현재의 분주함은 잠시 내려두고 성장을 위한 긍정의 인식을 무의식에 새기는 과정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일상 속 힐링이 됩니다. 나아가 훌륭한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는 메시지로 채웠죠. 우리에게는 타인에게 쉽사리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스스로 다독일 계기가 필요합니다.
언어에도 힘이 있습니다. 한글과 마찬가지로 영문 역시 문자가 가진 고유의 에너지가 존재합니다. 다소 이질적인 영어 문장을 베껴 쓰다 보면 어느새 말에 내포된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단순한 직독 직해가 아닌 본질적인 이해인 셈이죠. 이런 이유로 EBS에서 방영한 ‘공부의 왕도’에서도 영어 필사를 훌륭한 교육법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영문과 한글로 표기된 한 파트의 필사 분량은 긍정의 확언을 마음에 심는 고차원적이고 핵심적인 방법입니다.
‘시심비’라는 말이 유행이라죠. ‘시간 대비 만족과 효율’을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보통은 더 빠르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효율성을 의미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필사’야말로 좋은 문장으로 나를 응원하는 ‘시심비’가 뛰어난 취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정작 나를 돌아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지 못합니다. 필사는 오랜 시간 나와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게 오늘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오히려 유행된 까닭이 아닐까요. 성공하는 리더로서 필요한 마음가짐을 각자의 삶에 적용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리아 / 퍼포먼스 코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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