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고령층은 세배를 받지만 속내는 씁쓸하다. 갈수록 세태가 아기는 귀하게 받들고 노인들은 뒷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선을 앞두고 정부는 물론 지자체와 정당들이 저출산 대책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하여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그 심각성을 강조한 바 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연두기자회견에서 '출생기본소득'을 제안했다. 하지만 고령층도 유권자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노인대책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개혁신당의 이준석 대표가 지하철 어르신 교통카드를 폐지하고 그 대신 연 12만원 한도 종합교통카드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대한노인회로부터 노여움을 산 일이 유일하다. 통계청의 최근 인구추정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022년 17.4%에서 2030년 25.3%, 2040년 34.3%로 가파르게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저출산만큼이나 고령층 문제가 갈수록 심각한 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이 이렇게 외면할 수 있는가? 심지어 저출산고령위원회조차도 고령층 대책 활동은 전무한 실정이다.
고령화 문제의 핵심은 고령빈곤에 있다. 중위소득의 50% 이하 인구 비중을 나타내는 상대빈곤율에 있어 우리나라는 일본, 미국과 비슷한 15%대에 있다. 그러나 65세 이상 고령자 계층의 상대빈곤율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40%로 일본 20%, 미국 22%보다 현저하게 높다. 더구나 75세 이상 고령계층에서는 우리나라가 52%로 일본 24%보다 거의 배가 높다. 공적연금을 받는 고령자 비율은 57.6%(2022년)이나 1인가구 노인은 10명 중 7명이 빈곤상태에 있다.
이와 같이 심각한 빈곤으로 인해 생계비를 조달하기 위해 고령에도 편히 쉴 수가 없는 노인이 상당수 있다. 작년 12월 65세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5%(2021년)는 물론 일본 25.1%보다도 훨씬 높다. 이와 같이 고령빈곤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출에서 고령층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7%로 일본 23%는 물론 OECD 평균 18%(2019년)에 비해서도 크게 낮다.
특히 보건복지부 발표로 폐지수집 노동을 하는 노인 수는 58%에 달하는 75세 이상 고령자를 포함해 4만2000명으로, 최저임금의 13%가량인 월평균 15만9000원의 소득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폐지수집 고령층 실태는 1인당 국민소득 3만2000달러인 선진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 간다면 인구의 4분의 1이 고령층이 되는 2030년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일본은 OECD 가입을 계기로 1995년부터 고령층에 대한 복지지출 확대를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아사히신문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지옥'이 되었다는 점이다. 하물며 아직도 고령화 시대의 노인빈곤 문제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우리나라는 일본의 '노인지옥'보다 훨씬 참담한 미래로 다가가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다.
재정부담을 이유로 고령층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만큼 고령층 대책은 저출산 대책만큼이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국정과제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재정부담과 노인복지 향상 간의 합당한 균형을 세우고, 지원대상 선별기준을 세밀하게 설정해 지원이 필요한 빈곤노인층에 기초연금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독신고령층 거주문제 개선을 위한 양로시설 확충, 요양병원 지원 개선 등 다양한 지원대책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김동원 前 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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