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증권(ELS) 상품 판매와 관련 일부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금융기관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잘못된 설명이 포함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조금 반성을 하셔야 되지 않나 싶다."
지난 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올해 업무계획 설명회에서 기자단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은행, 증권사 등 ELS 판매사들을 지칭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과 '금융회사'라는 표현을 번갈아 썼다.
이 사례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 우리나라의 금융권에 대한 인식은 복합적이다. 기관이라는 말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공적' 의미가 짙다. 금융공기업을 '정책금융회사'가 아니라 '정책금융기관'이라고 칭하는 것이 이런 뉘앙스를 보여준다. 반면 금융회사는 민간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사기업'이란 의미가 강조된다.
문제는 정부 당국의 복합적 인식이 엇박자 정책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들의 가치 제고를 위해 자본시장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PBR이 낮은 은행·보험사도 정부가 지원해 가치를 제고할 '기업'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된 정책이다. 이번 정부 들어 잇따르는 민생·상생금융 정책은 은행 등 금융권을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기관'으로 인식한 결과다.
금융업계에서는 정부의 '엇박자' 정책에 대한 불만이 작지 않다. 따뜻한 아이스커피를 주문받았는데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할지, 얼음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민생·상생금융을 더 늘리자니 당기순이익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데, 기업가치를 높이려면 장사를 잘해서 주주에게 환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과 투자자 사이에서 항상 줄다리기를 해온 금융업계에서도 "올해만큼 최적의 조합을 찾기 어려운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당국이 금융권을 어떻게 바라볼지 정확한 인식 없이 정책을 펼친 결과가 업계의 경영전략을 세우는 데도 애로사항으로 작용한 것이다.
금융기관이냐, 금융회사냐 정체성의 혼란을 끊어내려면 정부 당국의 명확한 인식과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금융안정을 위한 정책뿐 아니라 금융산업 진흥책도 활발히 나올 수 있다.
은행이 이미 받은 이자를 돌려주고 비용으로 처리해 당기순이익이 감소하는 건 해외에서도 쓰는 금융기관(Financial Institution), 포용금융(Financial Inclusion) 등의 용어로는 설명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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