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주가가 장부가를 밑도는 저PBR주의 몸값을 높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후 증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저PBR주로 꼽히기만 하면 주가가 껑충 뛰는 바람에 너도나도 저PBR주라고 주장하며 관련 기사에 회사 이름을 넣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PBR은 기업의 시가총액이 순자산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PBR이 1배 미만인 경우 해당 기업은 존속하는 것보다 부채를 갚고 청산해 남은 자산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낫다는 뜻도 된다. 통상 주가수익비율(PER)과 함께 주식 투자자들이 제일 관심을 갖는 수치 가운데 하나다.
이달 7일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서 PBR이 1보다 낮은 종목은 모두 1118개에 이른다. 전체 상장사의 40%를 넘는다. 10년 전과 비교해 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2014년에도 PBR 1배 미만 기업이 전체 상장사의 43%를 차지했었다. 현재 국내 증시의 PBR은 코스피시장이 0.95배, 코스닥시장은 1.96배다. 전체적으로는 1.05배에 불과하다. 선진국(3.10배)은 물론 신흥국(1.61배)에 비해서도 저조한 수준이다.
최근의 주가 상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시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구체적 실행방안이 제시돼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긍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오랜 기간 고질병처럼 국내 증시를 괴롭혀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희망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상장사에 기업가치 개선계획 공표 권고 △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주요 투자지표를 비교 공시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개발 및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등이 담길 전망이다.
'한국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벤치마크인 일본과 상황이 다르다. 기대만큼 한계도 뚜렷하게 보이는 이유다. 단순히 PBR 배수나 배당성향 등 '눈에 보이는 수치'에 목을 매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일례로 올해 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태영건설은 PBR이 겨우 0.12배다. 지배구조개선을 비롯해 함께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술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선 기업의 이익 체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주주환원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 역시 "기업 실적과 같은 지속가능한 부분이 뒷받침돼야 한다" "상장기업들이 배당 확대나 자사주를 매입·소각할 여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외 교역비중이 높고, 시클리컬(경기순환적) 산업의 비중이 커 기업의 이익 변동성이 심하다. 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각종 규제를 풀고,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상속·증여세 완화도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다. 실제 한국의 상속세율은 최대 60%(경영권 지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주주가 주식을 팔아 상속세를 납부하면서 관련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속세 절감을 위해 주가를 등한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주가 하락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의 몫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일부 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그쳐선 곤란하다. 기업의 이익 성장, 자본시장 활성화가 선순환 구조로 이어져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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