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짓눌린 개인들, 하향 소비 속에 19일 이후 정부 대응 주목
17일까지 이어지는 최대 명절 춘제(설) 연휴 기간에도 하향 소비 등 알뜰 소비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대형 마트와 상점에 할인 상품과 재고품들이 남아돌면서, 디플레이션 그림자를 더 짙게 했다.
경기 선행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듯 70% 이상 중국 주식으로 구성된 홍콩 증시는 지난주 중국 당국의 부양책에도 불구, 개장 이틀 째인 15일에도 가까스로 마이너스를 면했다. 15일 춘제 연휴가 사흘 남았지만, 소비 진작 등 두드러진 반전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확산되는 하향 소비 추세, 더 깊어진 디플레이션 우려
과잉 생산과 소비 부진 속에서 농수산품 등의 가격 하락은 이어졌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 간의 할인 경쟁은 물론 자동차 가격까지 계속 내리막 길이다. 22년 만에 가장 빠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자동차 가격의 하락은 상징적이다. 비야디(BYD)는 탕 모델의 가격을 지난해 말부터 10,000위안(약 185만원) 낮췄고, 테슬라도 모델 3의 가격을 15,500위안(286만5000원) 떨어뜨렸다.
'온라인 최저가' 제공을 내세우는 온라인 플랫폼 티몰은 가격 경쟁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입점 업체들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전문 전자상거래 회사들도 "더 이상 판매자 중심의 시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차이나데일리의 지난 6일 보도에 따르면, 기업 실적 부진으로 춘제 보너스를 받는 대상자도 전년도에 비해 6.7%p 줄어 20.2%만이 받았다. 응답자의 예상 보너스 평균은 6950위안(약 128만원)으로, 전년보다 18%(1478위안) 줄었다. 가처분 소득 감소가 지갑을 닫게 했다.
1월 발표된 모건스탠리의 12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76%가 지난 6개월 동안 적어도 하나의 소비 항목에 대해 지출을 줄였다고 답했다. 모든 항목에 걸쳐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브랜드로 옮겨가는 추세였다.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도 1월 보고서에서 민간 소비의 완만한 개선 흐름 속에서 가계의 저가 소비 선호 패턴이 소비 개선 흐름을 제약할 것으로 분석했다. 가계 재산의 60%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침체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 비용에 짓눌리고, 늘어난 경기 불확실성에 불안한 개인들이 지출을 줄이고, 하향 소비로 돌아선 것이다.
부진한 물가 지수, 디플레 사이클 고착 우려 부채질
설 직전인 8일 발표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예상보다 가파르게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 사이클의 고착 우려를 키웠다. 전년 동월 대비 0.8% 떨어져 지난해 10월(-0.2%)에 이어 4개월 연속 하락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2009년 이후 15년 만에 가장 큰 낙차였다. 생산자 물가는 2.5% 하락했고 지난 1월 돼지고기 가격 17% 하락과 맞물려 우려가 컸다. 소비 부진 속에 공장 및 농장 등에서 과잉 생산으로 할인 제공이 많아진 탓이 컸다.
이런 가운데 소득 감소 우려까지 겹쳐 가성비를 따지며, 저가 물품을 선호하는 하향 소비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15일 홍콩 증시에서 전날에 이어 벤치마크 지수들이 가까스로 마이너스를 면한 것도 경제 선행에 대한 불신을 전달한 셈이다. 이날 항셍 지수는 전날보다 0.41% 오른 15944.63으로, 홍콩 증시 상장 중국 대형기업주 중심의 H주 지수는 0.46% 오른 5410.94로 장을 마쳤다. 지난주 중국 증시 당국의 부양책에도 불구, 두드러진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중국 당국의 대대적인 부양책 등 추가 대책을 주문하는 시장의 메시지란 해석이다.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동산 침체와 지방 정부 부채 증가 속에서 다음달 4일부터 시작되는 주요 정치 행사인 양회(전인대와 정협)를 앞두고 5개월 째 동결 중인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 인하 목소리도 크다.
중국의 증시와 소비 등 경제 성적들이 디플레이션을 떨쳐 버릴 수 있을지, 17일까지 이어지는 춘제(설) 연휴 이후가 관심사이다.
하향 소비 지적 속에서도, 춘제 연휴 특수 자신하는 당국
중국 당국은 17일까지 이어지는 춘제(설) 연휴와 3월 초까지 이어지는 춘윈 기간 '휴일 경제'가 작동해 소비가 되살아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관영 언론들도 지난 10일 시작된 연휴 기간 동안 소비 심리 회복을 전하며, 축제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상무부는 1월 말 주요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전체 온라인 소매 매출은 9% 각각 증가했다고 밝혔다. 여행 플랫폼인 취나알은 "설 다음날인 11일부터 13일까지 항공권 예약량은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라고 13일 분석했다.
중국 정부 당국자들은 춘제 휴가 기간 여행이 역사적인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춘제 여행객의 80%가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는 등 자동차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 올해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용이 많이 드는 고속철도나 비행기 등의 이용객은 당초 예상보다 14% 줄어드는 등 알뜰 여행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금융회사 나틱시스의 아태수석 이코노미스트 알리시아 가르시아-헤레로도 월스트리트저널에 "억눌린 수요 탓에 (여행·소비의) 외형은 늘 수 있지만 지출 측면에서 그다지 좋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경기 침체와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많이 열지 않고, 가성비를 따지는 하향 소비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춘제 연휴 직전인 8일 내놓은 분기별 보고서에서 경제 침체 속에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하며, 완만한 수요 회복과 물가 상승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보고서는 "장기적인 디플레이션이나 인플레이션의 근거가 없다"면서 "수요는 회복되고 물가도 오를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 당국은 대규모 부양에는 선을 긋고 있다. 고통 분담을 통한 구조조정과 질적 성장 등 산업 고도화를 내세우며 점진적인 구조조정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IG인터내셔널의 시장분석담당 허베 첸은 13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대규모 양적 완화 가능성은 적고, 최고 정책입안자들은 중국 경제가 직면한 도전들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를 꺼린다"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부양보다 장롱 속 목돈 끌고 나와 증시 활성화하려는 당국
증시 등 중국 경제에 대한 외부 우려는 깊다. 지난 1년 동안 시가총액 상위 300개 중국 기업으로 구성된 대표적인 벤치마크 지수인 CSI 300 지수는 19% 떨어졌다.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 항셍 지수도 각각 11%, 27% 하락했다. 큰 폭으로 떨어지던 주가는 중국 당국의 개입으로 지난 춘제 연휴 직전인 5~8일 1년 3개월 만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하락 폭이 좁혀졌다. 당국은 개인들의 장롱 속 거액을 끌어오려고 노력 중이지만 시장과의 신뢰 구축은 요원하다. "더 많은 투자 자금을 유입시키고 시장 안정을 유지하겠다"는 시장 안정 의사를 확실히 한 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어떻게 개인 자본 유입을 유도할 지도 관심거리이다.
경기 침체 속에서 가파른 외화 유출도 부담이다. 지난 한 해 중국에서 외국으로 빠져나간 돈이 687억달러(약 92조원)로 나타났다. 중국의 자본 순유출은 2018년(858억 달러) 이후 5년 만이다. 달러 강세 속에서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 내수 부진 등까지 겹쳐 경기 부진을 전망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정부 부채도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 말 중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은 300%에 육박하면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거시 레버리지' 계간 보고서에 따르면, 명목 GDP 대비 총 비금융 부채비율을 나타내는 거시 레버리지 비율은 2023년 287.1%로 전년 대비 13.5%p 늘어났다. 지난해 지방 정부 채무는 40조 7400억 위안으로 한해 채무 증가액이 5조 6800억 위안으로 목표 한도인 4조 5200억 위안을 1조 위안 이상 초과했다.
줄어드는 수출, 외자 이탈, 정부 빚 급증 등 삼중고 심화
지난해 11개월 동안 수출은 10.8%p 줄었다. 수출 부진 속에 최대 시장 미국의 최대 무역상대국 자리에서 멕시코, 캐나다에 중국이 밀려난 것도 어려워지는 수출 전선을 보여준다. 미 상무부 무역통계에 따르면 2023년 미중 무역액은 5750억달러(약 762조1625억원)로 전년 대비 16.7%가 감소했다. 미국 무역총액에서 중국 비율은 11.3%로 1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에 대한 공급망 배제가 더 심화되고, 관세를 더 높이려는 미국 정책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
공급망·산업망에서 중국에 대한 배제가 심화되면서 최근 6년간 중국의 상품교역에서 한미일의 비중이 급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13일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3년 사이 중국의 상품 교역에서 미국(-3.8%p), 일본(-2.5%p), 한국(-2.0%p) 등 한미일 3국의 비중이 8.3%p가량 줄었다.대신 러시아(+2.0%p),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2.3%p)을 비롯해 개발도상국의 상품교역 비중은 증가했다.
미국 역시 같은 기간 상품 교역에서 중국 비중이 5.8%p 줄었다. 미국 공산품 수입에서 중국의 비중은 2017년 24%에서 지난해 15%로 내려갔다.
고위험 지방정부에 신규 프로젝트 금지 등 경기 하향에 대비
부동산 침체와 지방 정부 부채 증가 속에서 중앙 정부는 톈진과 충칭시, 랴오닝·지린·헤이룽장·구이저우·윈난·간쑤·칭하이성, 네이멍구·닝샤·광시좡족 자치구 등 부채 고위험 지역에 지방 고속도로, 민간 공항 재건축 및 확장, 도시 철도, 도서관 및 공공시설 등 신규 프로젝트 금지를 지시했다. 과도한 부채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이난·안후이·후난성과 닝샤·광시좡족자치구 등 16개 지방정부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 보다 낮춰 잡았다. 경기 하향을 대비한 조치이다.
IG 인터내셔널의 허베 첸은 "경제 침체 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구조적인 문제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올해 중국 경제와 금융 시장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라고 단언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는 "디플레이션 관련 지표들은 몸부림치는 증시와 무너지는 부동산 시장과 함께 중국 정부의 지휘와 통제 방식에 심상치 않은 도전을 던지고 있다"라고 최근 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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