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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파월, 킹 메이커? 볼커의 실수 기억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4 18:28

수정 2024.02.14 18:28

김기석 국제부장 경제부문장
김기석 국제부장 경제부문장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주목받고 있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그가 최근에는 '킹 메이커'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금리인하 시기에 따라 재대결이 예상되는 조 바이든 대통령 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파월 의장은 역대 연준 의장 중 두번째로 인기가 없는 인물이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전 세계인의 눈총을 받고 있지만 그보다 더 인기가 없는 연준 의장도 있었다.
폴 볼커 의장이다. 연임에도 성공한 볼커가 역대 가장 인기가 없는 의장으로 꼽히는 이유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금리인상 때문이다.

1979년 8월 연준 의장이 된 볼커는 당시 10%가량이던 기준금리를 1980년 12월에는 19.1%까지 끌어올렸다. 파월보다 더 짧은 기간에 더 큰 규모의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특히 그는 금리를 한번에 4.5%p나 올리기도 했다. 2022년 연준이 단행한 자이언트스텝(0.75%p)보다 6배나 더 급격하게 올린 것이다.

볼커가 급격하게 금리를 올린 이유는 전전임자인 아서 번스 의장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번스 의장은 인플레이션 대응으로 기준금리를 높이는 대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증폭시켰다.

공격적 금리인상으로 물가는 잡혔다. 1983년 물가상승률은 3%대로 떨어졌고, 물가에 대한 걱정은 2022년까지는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다. 당시 미국 중소기업의 40%가 도산했고,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또 인기를 잃은 볼커는 3연임에도 실패했다.

동병상련에서인지 파월은 볼커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공격적 금리인상으로 세계 금융시장은 물론 미국 정치권의 미움을 받을 때 파월은 'Keeping at it'이라는 표현을 썼다. 인플레이션을 잡을 때까지 현재 상황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는 볼커 전 의장이 쓴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파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휘둘릴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매파'이던 파월이 '비둘기파'로 변신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미국 정치권의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연임에 목을 매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하고 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면 파월을 해고하겠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날렸다. 2026년 임기가 만료되는 파월로서는 정치적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파월은 연준 의장 자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연준은 모든 미국인을 위해 봉사하는 비정치적 조직이다. 정치를 고려하면 경제적 결과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파월이 정치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질문에 답한 말이다. 정치적 입김을 철저하게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파월의 존경을 받고 있는 볼커도 한때의 실수는 있었다. 인플레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1980년 재선을 노리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은근한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17.6%이던 금리를 9%대까지 내린 것이다. 정치적 결정의 후폭풍은 거셌다. 물가는 다시 급등하기 시작했고, 볼커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19.1%까지 올렸다. 이를 두고 '볼커의 실수'라는 말까지 생겼다.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치를 웃돌았다. 그 영향으로 3월 금리인하는 물론 5월 금리인하 가능성도 크게 줄었다.
파월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데이터에만 의존하면 된다.

볼커 전 의장을 본받는 것은 좋지만 실수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잘못 판단한다면 '파월의 실수'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할 수도 있다.

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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