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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자 부담 기업에 76조 지원, '밑빠진 독' 안되도록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4 18:33

수정 2024.02.14 18:33

살릴 기업 살리고 한계기업 걸러야
돈 풀기만으론 총선용 정책 못 면해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금리 위기 극복과 신산업 전환을 위한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방안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화상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금리 위기 극복과 신산업 전환을 위한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방안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화상
정부와 은행권이 중소·중견기업에 총 76조원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14일 정부와 여당, 은행권이 합의한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방안이다. 첨단 신사업 전환과 시설투자 촉진이 대책의 골자다. 여기에 더해 은행의 본질적 역할인 기업금융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주요 대책을 보면 정부는 중소기업에 19조4000억원을 공급해 고금리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5% 넘는 금리로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에 한해 1년간 최대 2%p까지 금리를 낮춰준다.
2조원 규모의 저금리 고정금리 대출상품을 포함해 11조3000억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가산금리 등을 면제하는 3조원 규모의 신속 정상화 금융지원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반도체·2차전지 등 주력사업에 15조원을,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에 20조원+알파(α)를 지원한다. 성장이 정체된 중견기업에도 15조원을 공급해 신사업 진출을 유도한다.

고금리 장기화 조짐 속에 이번 민관 합동 기업금융 지원대책은 시의적절하다. '이자장사' 비판을 받아온 5대 대형은행은 20조원의 맞춤형 기업금융을 제공, 힘을 보탠다고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5조원 규모의 신사업 투자 전용펀드, 2조원 규모의 회사채 유동화 프로그램 등 중견기업 특화금융은 진일보한 대책으로 평가할 만하다.

기업 자금사정이야 제각각이지만 고금리와 경기위축으로 이자 부담이 늘고 시설투자는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게 다수 기업의 현실이다. 고용인력도 줄이고 있는 판이다. 이런 중소기업의 부실과 은행의 대출건전성 악화는 여러 지표로 확인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3만6425개 외부 회계법인 감사기업 중에 11.7%(4255개)가 완전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2019년 이후 최다인데,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한계상황에 내몰린 기업이 늘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 통계상 지난해 말 기준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평균의 배 수준인 0.6%까지 올랐고, 전국의 어음부도율은 0.23%로 2001년(0.38%)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재정이 대거 풀리면 기업 형편이 좋아진다. 그러나 '돈잔치'가 끝나고 긴축으로 돌아서면 준비 안 된, 경쟁력 없는 기업들부터 쓰러지는 게 이치다. 이 가운데 잠재성장력과 기술력을 갖추고도 일시적 자금난으로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기업을 찾아내 살려내는 게 제대로 된 정책이다.

반대로 정책자금으로 연명하는 부실 한계기업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정리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고통이 있더라도 새살이 차오를 때까지는 아픔과 인내가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 없이 돈만 쏟아붓는 식의 '기업 달래기'는 총선용 선심정책이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자금지원만이 능사도 아니다. 제조강국으로 부상한 중국, 글로벌 생산기지로 성장한 베트남 등 신흥국과 견주어 경쟁력을 갖춘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을 키워내야 한다.
경제 규모에 비해 위축된 원격의료,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서비스업종의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중소기업 역량을 높여 해외 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가 없는지, 시대에 역행하는 법·제도가 없는지, 취지와 달리 낭비되는 예산이 없는지 계속 들여다보고 고쳐나가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금융과 정책의 두 축을 원활하게 활용해야 중소·중견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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