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1921~1998)의 초기 작업은 고철이나 폐자동차 등의 폐기물을 결합하고 압축해 추상적인 입체로 재구축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전후 아방가르드의 관심이 반영된 ‘누보 레알리즘’의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기법적으로는 전통적인 ‘조소’ 형식의 깎거나 붙이는 관습에서 벗어나, 건축과 산업 기술에 적합한 용접 방식으로 ‘조립’해 ‘구축’하는 현대조각의 변화와 실험성을 초기 작업에서 강하게 엿볼 수 있다.
'생드니의 남자'(1958)는 세자르가 생드니 철제 주조 공장에서 작업하던 시기의 용접 조각으로, 프랑스의 전설적인 ‘새 인간(Birdman)’ 레오 발렌틴에게서 영감을 받아 거대한 금속 날개와 결합한 인간 형상을 표현했다.
이 시기의 조각은 전후의 실존주의적 사고와 현대사회의 물신주의 등을 반영해, 세자르 외에도 많은 조각가들이 당대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물성과 표현적인 제스처에 대응할만한 철 용접 조각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였다. 점차 조각은 내적인 양감을 이상적으로 충족시키던 전통 조각의 가치에서 벗어나 외부의 힘에 의한 물질적 변형과 더불어 외적 환경을 구축하는 구조적 효과를 발휘했다.
세자르는 1950년대 용접 조각에 매진했던 시기를 지나, 파쇄기로 고철과 폐자동차 등을 압축하는 ‘프레스 조각’을 시도했다. '노란색 뷰익'(1961)은 세자르의 초기 프레스 조각 작품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던 자동차를 육중한 파쇄기로 압축해, 특정한 색과 형태를 가졌던 사물을 물질적 차원의 고철로 전환시켜 추상적인 조각의 차원으로 기념비성을 재가동시켜 놓은 셈이다. 세자르는 자동차 뿐만 아니라 가전제품이나 통조림 깡통, 식기 등 대량 생산된 일상의 평범하고 익숙한 사물을 모아서 육면체의 큐브 형태로 압축해 추상적인 조각의 양감과 물성, 스케일로 조각적 변형을 시도했다.
한편, 1960년대 중반에는 폴리우레탄을 조각 재료로 사용하면서 그것의 부풀어 오르는 성질을 극대화한 '팽창 조각'을 선보였다. 재료의 우연성과 즉흥성을 십분 활용해 가변적인 액체 상태의 폴리우레탄을 바닥에 흐르게 한 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차츰 굳게 되는 일련의 시간적 변화의 과정을 작품의 개념으로 끌어들였다.
세자르는 깡통이나 양동이 같은 사물이 바닥에 엎어지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액체 상태의 내용물이 바닥으로 쏟아져 흐르는 연극적 상황을 제시했다. 그는 조각 재료의 화학적 성질에 의해 팽창하는 원리가 임의의 조각적 형태를 결정하게 되는 우연성에 주목하도록 했다.
조각 재료를 매개로 한 형태와 물성 간의 관계를 ‘압축’과 ‘팽창’의 원리로 탐구했던 세자르는, 그 이후 신체의 부분을 크게 확대하거나 재조합하는 작업으로 또 다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대형 엄지손가락 조각은 세자르의 시그니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서울 송파구 올림픽 조각공원에 높이 6m 크기의 '엄지손가락'(1988)이 소장돼 있다. 이는 인간 형상으로서 각 개인의 특성보다는 신체 조직의 일부로서 대량 생산된 사물과 비슷하게 크게 확대된 스케일의 추상성과 조형적 완결성을 획득하는 조각적 변형을 말해준다.
'한 쌍의 반인반수'(1995)는 세자르가 꾸준히 제작해 온 ‘켄타우로스’ 시리즈 중 하나로 국내 아라리오 뮤지엄이 소장해 현재 제주 탑동에 있는 전시장에 상설 전시 중이다.
반인반수의 정체성을 인체와 기계의 결합으로 재해석한 이 조각은, 인체의 파편을 기계적으로 재배열함으로써 고전적인 인간 형상에 대한 조각적 접근에 대해 동시대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처럼 세자르는 당대의 경험과 인식을 토대로 조각적 개념을 갱신해 조각의 역사를 지속시킨 20세기의 대표적인 조각가라 할 수 있다.
안소연 미술 비평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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