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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에 킹크랩 싹뚝...하바롭스크 천사에게 대접한 K-한식"[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⑥]

문영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9 11:00

수정 2024.05.03 11:25

⑥ 러시아편>>항카호수에서 하바롭스크로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항카 호숫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6시도 안 된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밥 먹고 할 게 없어 일찍 자서 그런가보다. 사방이 조용하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린다. 주변에 텐트 치고 자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조용조용 호숫가로 걸어갔다. 날이 흐려서 하늘이고 호수고 온통 회색빛인 것이 마치 수묵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호수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물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이 평화롭고 운치 있어 보인다.

감기에 걸린 이반을 위해 탄이 만든 러시아 킹크랩을 넣고 정성스레 만든 해물탕. 사진=김태원(tan)
감기에 걸린 이반을 위해 탄이 만든 러시아 킹크랩을 넣고 정성스레 만든 해물탕. 사진=김태원(tan)

하바롭스크의 천사, 이반네 식객이 되다
어제 저녁 마음 졸이며 지나온 비포장 길을 다시 나와 북쪽으로 향한다. 도로 상태가 우리나라 같지 않아서 길이 갑자기 안 좋아지곤 한다. 바퀴가 빠지도록 큰, 푹 패인 포트홀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다반사이고 아예 비포장인 도로도 자주 만난다.

다음 목적지인 하바롭스크에서는 이반이라는 러시아친구를 카우치서핑을 통해 알게 되어 그의 집에 묵기로 했었다. 새벽길을 달려 6시반쯤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시간이라 일단은 우리끼리 하바롭스크를 구경하기로 했다.

하바롭스크는 극동 러시아에서 가장 큰, 인구 130만의 대도시이다. 몇일간 집구경, 사람구경을 거의 못하다가 대도시로 들어오니 신호등과 사람들, 거리의 상점들 등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반가왔다. 커다란 몰과 마트를 보고 들어가보았다.

한국은 밤이건 낮이건 어디서건 차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전화 한통으로 보험서비스가 출동하기때문에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아 구하기 힘들었던 자동차 자키(타이어 교체 등을 위해 차를 드는 도구)와 복스세트(타이어 교체공구)를 여기에서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면 되는구나?! 사진=김태원(tan)
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면 되는구나?! 사진=김태원(tan)

탄이 나에게 사고싶은 것들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직원에게 물어보려고 필요하다고 한다. 11년전 우리는 스페인어권 나라들에서 자주 그림을 그려 의사소통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그림이 필요한지 의아한 마음에 “구글에서 사진 검색해서 보여주면 되잖아?”라고 되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아! 그러면 되는구나. 굿아이디어~”하며 머쓱해서 도망간다.

직원을 찾아 물어보았더니 다행히 그 역할을 하는 제품이 있다고 한다. 우리 까브리도 들 수 있는지 사용법은 어떤지 이것저것 스마트폰 번역기를 통해 물어보자 직원 두 분이 사용법도 직접 시연해 보이며 알려주신다. 러시아에도 친절한 사람이 있다!

필요한 도구를 기분좋게 구입한 후 중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나니 반가운 이반의 메세지가 와있었다. 이제 일어났다며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우리는 신이나서 이반네 집으로 향했다.

러시아 청년 이반은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60여년이 된 저층아파트에 산다. 사진=김태원(tan)
러시아 청년 이반은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60여년이 된 저층아파트에 산다. 사진=김태원(tan)
30년전 어릴적 한국이 떠오르는 이반의 아파트. 사진=김태원(tan)
30년전 어릴적 한국이 떠오르는 이반의 아파트. 사진=김태원(tan)

스탈린 시대 지어진 저층아파트.. "옛날 생각 나네"
이반이 사는 집은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60여년이 된 저층아파트이다. 단지가 매우 넓어서 똑같은 건물이 많은데다 우리나라처럼 건물에 번호 같은건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헤메다 겨우 발견했다. 비가 오면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기는 흙바닥이었지만 그래도 까브리를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건물입구와 집 현관이 항상 잠겨있어 안전하게 느껴졌다.

갈색 고수머리에 흰피부의 서양인 같은 이반은 2층에 혼자 살고 있었다. 맨 안쪽방을 우리가 머물도록 해주었는데 그가 침실로 쓰던 더블베드가 있는 큰방이었다. 그리고 이반은 그 옆에 방겸 복도같은 공간에 컴퓨터와 간이침대같은 것을 놓고 잤는데 우리가 화장실을 가거나 외출하려면 그곳을 지나가야해서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후 여러번 아침에 외출하다가 이반이 여자친구와 그 작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나가려다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모른척한 적이 많았다. 참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이반네 아파트의 특이한 점은 창이 홑창이고 층고가 매우 높았다. 겨울엔 우리나라보다도 무지무지 추울텐데 괜찮나 싶었다. 겨울에 오지 않아 다행이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었지만 다행히 2층이어서 걸어오를만 했고 방에는 에어컨도 있어 쉬며 밀린 유튜브 작업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면서 더위에 허덕이던 우리는 더위가 한풀 꺾일 때까지 이 곳에 머물고 싶었다. 원래는 3~4일간 머무르는 예정으로 카우치 요청을 했었는데 혹시 몇 일 더 있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이반은 시원스럽게 너희 원하는 만큼 있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반네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자동차 부품들을 유통하는 이반의 사업장. 사진=김태원(tan)
자동차 부품들을 유통하는 이반의 사업장. 사진=김태원(tan)

그의 직업은 중고차 부품유통업이라고 한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며 매운 것도 잘 먹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매운 해물탕이며 가끔 시내의 한국식당에 먹으러 간다는 말에 우리는 무척 놀랬다. 매운걸 전혀 못먹을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집에 함께 살며 육개장, 짜장면, 김치찌개 등 여러 가지 한국음식을 이반에게 해주었는데 다 좋아하며 잘 먹었다. 심지어 매운 것은 탄이보다 더 잘 먹었다. 몇일 지나 이반이 감기에 걸려 매우 기운이 없을 때가 있었는데 탄이랑 멀리 큰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킹크랩과 문어, 새우, 관자 등 여러 해산물을 넣은 해물탕을 해주었다. 이반은 “내 부엌에서 해물탕이 만들어지다니 너무 신기해!”라면서 눈에 생기가 도는 모습에 매우 뿌듯했다. 탄에게 “정말 맛있어. 탄 너는 좋은 쉐프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먼지 속에서 달리는 차들. 사진=김태원(tan)
먼지 속에서 달리는 차들. 사진=김태원(tan)
러시아 여행은 9월이 가장 좋다는 팁까지..
우리는 이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 여행은 9월이 가장 좋다고 한다. 러시아어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보고 배웠는데 발음을 따라하기가 무지무지 어려웠다. 이번 생에 러시아어 발음까지는 힘들 것 같아 미안해 이반...

저녁식사 중에 보드카 이야기가 나왔는데 독한 술을 싫어하는 시로가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 ‘루스키 스탠다드’라는 보드카라는 이야기를 했다. 회사 출장으로 모스크바에 갔을 때 얼굴 찡그리며 한잔 억지로 마시다가 “어?”했던것이 보통 40도 넘는 독주는 목이 타들어가 듯이 불편함이 있었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이 마시기 좋은 느낌이었던 기억이 났다. 말이 나온김에 집에 가는 길에 한병 사서 이반네 집에서 다같이 마시기로 했다. 집에 와보니 정전이다. 한국에선 열살 이후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핸드폰 불빛을 손전등처럼 비추니 오히려 분위기 있어 좋았다.


이반이 러시아에서 보드카 마시는 법이라며 안주로 해바라기씨유에 겨자와 소금을 섞어 빵을 찍어 먹어보라고 했다. 작은 보드카 한병으로 모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시로와 탄의 '내 차 타고 세계여행' 365일]은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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