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대혼란 <上>
醫政 강대강 대치에 환자들 발동동
의사는 어떤 경우에도 병원 지켜야
醫政 강대강 대치에 환자들 발동동
의사는 어떤 경우에도 병원 지켜야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연세대 의대생들은 지난달 26일 졸업식에서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고 소리 내어 선서했다. 의사의 양심과 의무를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이다. 이제 곧 의사의 길로 접어들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에도 환자를 먼저 생각하겠다는 다짐이며, 의사라면 누구나 했을 선서다. 똑같이 선서를 했을 전공의들이 지금 신음하는 환자를 팽개치고 그들이 비웃던 시위꾼들처럼 거리로 나서 떼를 쓰고 있다. 선서문은 그냥 생각 없이, 의무감에서 읽었을 뿐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가운을 입은 것 같은 의사들의 속내를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 무슨 변명을 해도 의사들은 '밥그릇 투쟁'을 하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른다. 변호사를 한 해에 1000명씩 뽑는다고 할 때도 이런 반발은 없었다. 의사들은 왜 이럴까. 그들은 환자의 목숨을 자기들 손에 쥔, 즉 인간 생명을 무기로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다.
응급환자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 정부가 손을 들 줄 알 것이다. 얼마나 비열하고 졸렬한가. 세상에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도 환자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의사의 직분이다. 그러잖으면 의사로서 자격이 없다. 타이태닉호의 선장은 승객이 다 탈출하는 것을 보고 마지막까지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방금 전까지 치료하던 환자의 상태가 악화돼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의사의 도리다. 자신의 가족이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인가. 의사에게 환자는 일시적 가족과 같은 개념이다.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고, 나았을 때 기뻐하며,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눈물로 유족을 위로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인술(仁術)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인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의사들이 고생하는 것은 안다. 국민들은 병을 고쳐주는 의사를 적대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의사들은 너무 돈벌이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소아과나 외과 등을 기피하고, 치료를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환자들의 모습을 흔히 보았다. 서울에서도 분야만 잘 고르면 돈벌이가 되니 지방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작금의 사태가 그래서 발생한 것 아닌가.
코로나 팬데믹 때 땀을 철철 흘리며 검사를 하던 의사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국민들은 위급할 때 몸을 내던질 줄 아는 의사를 존경하면서 환자의 곁에서 애를 태우며 치료에 전력을 기울이는 의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 한다. 의사들은 지금 바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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