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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고질적 재판 지연… 법관 증원 절실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06 18:37

수정 2024.03.06 18:37

김성환 사회부장
김성환 사회부장
대법관 공백 사태가 2개월 만에 해소됐다. 엄상필·신숙희 대법관이 지난 4일 취임하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12인이 온전하게 갖춰졌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파급력이 크고 쟁점이 복잡한 사안이 대상이 된다. 특히 노동 이슈와 관련된 판결이 조속히 종결될 것으로 기대해봄 직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국내 사법부의 가장 고질적 과제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재판지연 현상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2022년에 소속 변호사들을 상대로 재판지연 관련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다. 응답자 666명 중 592명(89%)이 최근 5년간 재판지연을 겪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민사소송 제기 후 법정에서 판사를 보기까지 6개월 넘게 걸렸다는 응답이 25%였다. 민사 1심 재판에서 판결 선고를 받는 데 1년이 넘었다는 응답 비중도 86%를 넘었다.

재판지연은 해가 갈수록 심화하는 추세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판사 1명이 판결하는 민사 단독 사건은 1심이 마무리되는 데 2018년 4.6개월이 걸렸지만 2019년 5.1개월, 2020년 5.3개월, 2021년 5.5개월로 늘었다. 판사 3명이 업무를 보는 합의부 사건은 더 심각하다. 1심 합의 사건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9.9개월, 2020년 10.3개월이 걸렸다. 2021년부터는 12.1개월이 걸렸다. 지난해엔 14개월로 더 늘어났다. 형사재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형사 합의 사건은 1심 판결까지 6.8개월이 걸렸다. 이 역시 과거 대비 매년 기간이 늘고 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재판지연을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던 조희대 대법원장도 지난 1월 취임 후 답을 내놓았다. 2월 법관 인사가 그 결과물이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대법원장은 2월 인사를 통해 여러 대책을 추진했다. 그중 하나는 법원장 재판업무 분담이다. 담당 법원 행정을 지휘하는 법원장도 재판업무를 담당토록 한 것이다. 서울고법원장의 경우 올해 민사 60부 재판장을 겸임한다. 파기환송된 민사사건을 맡아 처리키로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올해 민사 단독 재판부에서 장기미제사건의 재판업무를 담당키로 했다. 일선 지방법원에서도 일부 법원장이 재판업무를 병행키로 했다.

법관 사무 분담 기간도 늘렸다. 쉽게 말해 판사가 한 법원에 머무르는 기간을 늘렸다. 재판장 2년, 배석판사 1년으로 돼 있던 기간을 각각 3년과 2년으로 1년씩 늘렸다. 법조인들 사이에선 법관 인사 직후로 선고일정이 잡히는 경우 사실상 추가 공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재판 도중 판사가 바뀌는 경우 법관이 다시 사건 내용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재판적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인다. 사법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상근 법관은 10명에서 17명으로, 판사 업무를 돕는 재판연구원(로클럭) 정원은 350명에서 400명으로 확대했다.

다만 법조계에선 조 대법원장의 이런 노력에도 물음표를 찍는다. 일부 사건 처리가 빨라질 수 있어도 명쾌한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법관 수가 고정된 상태에서 복잡한 사건이 쌓이는데 아무리 사법부가 조직을 효율화해도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 대법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장기적으로 재판지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관 증원이 절실하다"며 "오래전부터 추진하고 있다. 국회 통과가 안 되고 있는데,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7일 조 대법원장이 주재하는 첫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법관 증원 내용을 담은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지연으로 흐르는 시간은 모두 사건 당사자들의 손해로 직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 사법부에 필요한 것은 혁신보다 법관 인력 증원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 대응이 절실하다.

ks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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