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아내 죽인 뒤 태연히 대통령 비서실 출근…불륜 의심 부부싸움이 비극으로

뉴스1

입력 2024.03.17 05:00

수정 2024.03.17 09:51

2022년 5월 9일까지 대통령과 참모들이 근무했던 청와대. ⓒ 뉴스1 DB
2022년 5월 9일까지 대통령과 참모들이 근무했던 청와대. ⓒ 뉴스1 DB


2006년 3월 17일 0시59분, 청와대 행정관(왼쪽 사진 앞)이 급히 자신의 아파트를 나서는 모습과 1시간16분 뒤인 2시15분 코트없이 맨발 차림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찍힌 CCTV. ⓒ 뉴스1 DB
2006년 3월 17일 0시59분, 청와대 행정관(왼쪽 사진 앞)이 급히 자신의 아파트를 나서는 모습과 1시간16분 뒤인 2시15분 코트없이 맨발 차림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찍힌 CCTV. ⓒ 뉴스1 DB


2006년 3월 17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교회 앞 도로에 주차된 카렌스 차량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돼자 경찰이 정밀감식을 하고 있는 모습. (YTN 갈무리) ⓒ 뉴스1
2006년 3월 17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교회 앞 도로에 주차된 카렌스 차량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돼자 경찰이 정밀감식을 하고 있는 모습. (YTN 갈무리) ⓒ 뉴스1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예전 어른들은 '신랑에게 새 신발을 사주거나 닭 날개를 주면 바람을 피운다'며 새 신발을 사주지 말고, 닭 날개를 주지 말라고 했다.

18년 전 오늘, 2006년 3월 17일 이 말이 다시 한번 시중에 나돌았다. 그것도 권력 심장부인 청와대와 관련돼서.

◇ 학생운동권 출신 청와대 3급 행정관, 여당 당직자인 부인 살해

3월 17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모 교회 앞 도로에 카렌스 승용차가 불법주차 돼 있는 것을 본 주차단속원은 '차를 빼라'며 차 문을 두들겼다.

그런데도 운전석 의자에서 뒤로 젖힌 채 쉬는 자세의 운전자가 아무런 응답이 없자 놀란 주차 단속원은 경찰에 신고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이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대변인실 부국장인 A 씨(35)로 목 졸린 흔적에 따라 경찰은 살인사건으로 판단, 가족들부터 조사에 나서 그날 오후 2시 30분 남편 B 씨(39)를 참고인 신분으로 연행했다.


B 씨는 놀랍게도 청와대 비서실 3급 행정관(홍보기획비서관실)이자 노무현 정부 청와대 주축을 이룬 386운동권 출신으로 밝혀졌다.

◇ 靑 행정관 체포 뒤 경찰 브리핑, "불륜 관계→ 아는 여자 후배"로 왔다 갔다

중앙부처 국장급 혹은 고참 과장급인 3급 공무원, 그것도 청와대 행정관이 범인이라는 사실에 많은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또 청와대, 열린우리당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 책임론까지 들고 나왔다.

강력 형사사건이 정치적 색깔까지 띠게 되자 경찰도 곤혹스러워했다.

그 때문인지 범행 이유에 대한 경찰 설명이 왔다 갔다 한 것.

B 행정관으로부터 '내가 그랬다'는 진술을 받아낸 경찰은 18일 언론 브리핑에서 △ 아파트 CCTV에서 A 씨와 B 행정관이 17일 오전 0시 59분쯤 함께 아파트를 나서는 모습 △ 1시간 16분 뒤인 오전 2시 15분 B 씨가 맨발로 혼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왜 맨발인가를 물었더니 "B 행정관이 '내가 사준 신발을 신고 바람을 피우러 다니냐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 벗어버렸다'고 했다"며 불륜이 발단돼 부부싸움을 했고 결국 살인으로 이어졌다고 브리핑했다.

하지만 경찰은 다음날 "잘못 전달됐다"고 진화에 나섰다.

경찰은 "16일 밤 12시 무렵 B 행정관에게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와, 이를 놓고 부부싸움 했고 화가 난 A 씨가 집 밖으로 나가자 B 행정관이 따라나섰다"면서 "전화를 걸어온 여성이 어떤 관계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확인한 바 없다"고 불륜 관계가 아닌, 아는 여성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 한밤중 여성 전화에 화가 난 부인 집 밖으로…따라 나간 행정관, 차에서 그만

구속영장에 나타난 범행 과정을 보면 A 씨가 부부싸움 끝에 집 밖으로 나가자 B 행정관이 뒤쫓아가 '잠시 이야기나 하자'며 부인을 자신의 카렌스 승용차에 태우고 1㎞ 떨어진 전농동 한 교회 앞 도로까지 갔다.

B 행정관이 잠시 담배를 피우는 사이 술에 취한 A 씨가 운전대에 올라 차량을 몰려고 하자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A 씨가 "죽여버리겠다"며 전화를 걸어왔던 여성과의 문제를 따지는 것에 격분한 B 행정관은 오전 1시 30분쯤 아내의 목을 넥타이로 조른 뒤 현장을 벗어났다.

◇ 행정관 태연하게 靑 출근, 여당에 전화해 '출근했냐' 묻기까지…경찰 "우발적 범행"

B 행정관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지만 17일 아침 태연하게 청와대에 정상 출근했다.

또 A 씨가 당직자로 있는 열린우리당에 "아내가 어젯밤 안 들어왔다. 지금 출근했냐"며 걱정하는 전화까지 걸었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우발적 범행으로 보인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우발적 범행으로 보는 이유로 △ 범행 도구인 넥타이도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퇴근 후 코트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것 △ 부인이 나가자 급히 코트를 입고 따라 간 점 △ 범행 장소가 공개 장소인 점 △ 살해 후 승용차를 방치한 점 △ CCTV가 있는 것을 알고도 엘리베이터를 탄 점 등을 들었다.

A 씨 출근 여부를 물었던 것에 대해서도 경찰은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내 생사를 알아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전화 건 여성은 靑 7급 직원, 사건 발생 3일 만에 사표…野, 노무현 책임론 거론

16일 밤 B 행정관에게 전화를 건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해 경찰은 "사적이 문제이다"는 선에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7급 C 씨로 B 행정관과 교제하는 사이라는 말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C 씨는 사건 발생 3일 만인 20일 사표를 냈다.

즉각 사표를 수리한 청와대는 교제 여부에 대해선 역시 사생활 문제라며 답을 피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관계자가 "청와대에서 올 초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경위 파악에 나섰던 것으로 안다"고 해 파문이 확산했고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책임론까지 거론했다.

◇ 부부, 학생운동권 선후배 사이…노무현 대통령 이름으로 조의금

대학 5년 선후배로 학생 운동을 하다 만난 A 씨와 B 씨는 10년간 교제한 끝에 2003년 11월 결혼한 이른바 동지적 관계였다.

B 씨는 민주당 의원 보좌관을 거쳐 2002년 노무현 대선캠프에 합류한 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 행정관,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 국정상황실, 홍보기획비서관실에서 근무했다.

A 씨는 1995년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들어가 서울시 홍보기획과에서 근무했다. 이후 민주당 의원 보좌관을 거쳐 열린우리당 창당 때 당을 옮겼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본인 이름으로 A 씨 빈소에 조의금을 보낼 만큼 당시 386 운동권에서 알려졌던 A 씨 부부 사건은 학생 운동권 도덕성에 큰 상처를 냈다.

◇ 1심 징역 15년, 2심 "8개월이나 여성 문제 해결 못한 잘못 있지만 참회하고 있다" 13년형

A 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자 '우발적이었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006년 11월 10일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6부(서명수 부장판사)는 "고위 공직자로서 여자 문제로 인해 처로부터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다른 여인과의 문제를 8개월 동안 해결하지 못해 갈등의 계기를 마련한 잘못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또 "말다툼 과정에서 모욕적 언사를 듣고 범행했다고 하나 설사 그렇더라도 살인할 만한 피해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깊은 참회를 하는 점, 이 사건으로 인해 가족관계는 물론 교우관계도 파탄 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 점 등을 감안해 감형한다"며 2년을 줄인 징역 13년형을 내렸다.


B 씨는 2019년 3월,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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