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고금리·고물가에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통신비 부담이라도 덜어주겠다"며 연일 통신정책을 내놓고 있다. 우선 단통법을 폐지해 보조금 액수에 대한 규제를 풀기로 했다. 법 개정 전에 지원금 액수를 매일 변경해 공시할 수 있도록 시행령부터 고쳤다. 또 이동통신 회사를 갈아타면 최대 50만원까지 전환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줬다. 정부는 이동통신 회사들에게 10년 이상 막아뒀던 경쟁사 가입자 뺏기 경쟁을 허용해 주면, 당장에 지원금 경쟁이 불붙을 것으로 계산한 듯 하다. 이동통신 회사들의 경쟁으로 국민들은 비싼 스마트폰을 싸게 살 수 있는 효과를 누리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라는 답을 기대하는 듯 싶다.
그런데 답이 안 맞아 떨어진다. 통신비 부담을 줄였다는 답은 커녕 시장에서도 기업들도, 소비자들도 원망만 늘어난다.
당장 이동통신사 지원금이 정부 생각처럼 전국민에게 영향을 못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용자가 이동통신 회사를 갈아타면 통신사 전환지원금 50만원, 추가지원금 50만원, 유통업체가 이동통신회사 지원금의 15%를 지급해 최대 115만원을 지원받아 150만원짜리 최신 갤럭시S24 스마트폰을 공짜로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매월 내야 하는 통신요금 얘기는 없다. 따지고 보면 10년전에도 공짜폰을 받은 사람들은 한달 6만원 이상 비싼 요금제를 2년 이상 계약하는 조건이 있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이동통신 회사들이 90만원의 원가를 들인 가입자라면 120만원 이상은 벌어야 기업이 유지되지 않겠는가. 하물며 최근엔 스마트폰 값이 150만원이나 되니, 한달 11만원 이상의 비싼 요금제를 2년 이상 쓰도록 강제해야 원가를 맞출 수 있을 듯 싶다. 그렇잖아도 고물가·고금리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월 11만원짜리 이동통신 요금 가입이 쉽겠는가. 결국 방통위의 공짜폰 계산은 일반 국민들을 향해 내놓을 계산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정부의 통신비 정책이 가진 또 다른 맹점은 이용자 차별이다. 어제 A 이동통신 회사가 지원금 20만원, 전환지원금 30만원을 주겠다고 해서 휴대폰도 바꾸고 이동통신 회사도 바꿨는데, 오늘 B사가 지원금 25만원, 전환지금을 35만원을 공시한다면 나는 어제 올바른 선택을 위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받았었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이동통신 회사와 정부의 정책이 아용자를 매일 차별하는 구조를 만들어놨고 화가 나지는 않을까? 괜시리 정부가 나서서 매일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고 정부를 향해 궁시렁거릴 듯 하다.
정부의 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은 계산식이 틀렸다. 이동통신 회사의 지원금 경쟁 만으로는 대다수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을 못 덜어준다.
우리 정부가 이동통신 회사의 보조금 정책을 쥐었다 풀었다 한 것이 2000년 부터이니 무려 20년이 넘는다. 큰 틀의 보조금 정책을 바꾸는 시기에는 늘 1년 이상 국회와 시민단체, 언론, 학계 가 참여하는 지루한 논란을 겪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지루함이 없다. 하다못해 여야 추천 상임위원들의 토론장인 합의제 기구 방송통신위원회 조차 합의가 반쪽짜리다. 국회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논란을 생략하는 바람에 틀린 계산식을 바로잡을 기회까지 함께 생략된 것 아닐까 싶다. 지금이라도 반대편의 계산식을 진정성 있게 살펴봤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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