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리얼돌을 여자친구(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스크걸’)로 둔 지질한 직장남에서 불륜남녀를 뒤쫓는 노섹스 기혼남(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LTNS')으로 분하더니 이번에는 닭강정이 된 짝사랑 여자를 추적하는 인턴 사원 ’고백중‘(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닭강정')을 연기했다.
최근 1년간 발표하는 작품마다 ‘인생 캐릭터를 경신’ 중인 배우 안재홍의 이야기다. 동명 웹툰 원작 드라마 ‘마음의 소리’와 ‘응답하라 1988’ ‘멜로가 체질’로 친숙한 안재홍이 독특한 소재의 OTT 드라마에서 연달아 호연을 펼치며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닭강정’은 영화 ‘스물’ ‘극한직업’,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10부작 미드폼 드라마. 안재홍은 이 감독과 ‘멜로가 체질’이후 다시 주연 배우와 감독으로 만났다.
이병헌 감독과 또 작업 "행운이죠"
안재홍은 “이병헌 감독과 작업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며 “'닭강정'은 ‘멜로가 체질’과는 결이 다른 작품인데, 그저 감독님이 어떤 이야기를 해나갈지 궁금해서 너무너무 같이 하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이병헌 감독과는 알게 된 지 꽤나 오래됐다. 이 감독이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를 할 당시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저는 당시 ‘족구왕’을 할 때였는데, 당시 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나른한 게 감독님의 멋짐 포인트”라고 말했다.
“대본을 받고 신났다. 시나리오 보고 원작을 봤는데 ‘아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원작의 박지독 작가가 나를 보고 그렸나? 싶기도 했다. 여타 웹툰과 다른 느낌의 작화였다. 그게 이 작품이 가진 마성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드라마 공개 이후 프로듀서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는 “작가님이 누군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데, 드라마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자신이 생각한 고백중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어서 놀랐다고 해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며 웃었다.
동명 웹툰을 드라마한 ‘닭강정’은 설정부터 기발하다.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를 되돌리기 위한 '모든기계' 사장 최선만(류승룡)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인턴 사원 고백중(안재홍)의 신계(鷄)념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
샛노란 바지에 핑크 셔츠를 입고 그 위에 하늘색 조끼를 유치원생처럼 차려입은 고백중은 등장부터 시선을 끌며 실실 미소를 자아낸다. 드라마 ‘무빙’으로 날아오른 류승룡도 생활형 코믹연기와 만화같은 과장된 연기를 오가며 안재홍과 뛰어난 호흡을 보여준다.
안재홍은 “고백중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등장하는 첫 장면이 아주 중요했다”며 “보통 원작의 캐릭터 싱크로율을 고집하지 않는 편인데, 이 드라마는 웹툰과 맞닿아있더라. 그래서 원작 속 캐릭터와 의상을 동일하게 해서 마치 만화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백중의 등장과 함께 이 인물이 범상치 않다는 게 각인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백중을 보던 여고생이 “이상해, 자꾸 보게 돼”라고 하는데, 이 대사가 마치 선전포고와 같다고 생각했다. 막춤을 추면서 걸어 나온다는 지문이 있었는데, 그 춤을 어떻게 다르게 추지, 어떻게 닭강정스럽게 추지, 고민돼서 아이키 안무가를 찾아가서 지도ㄹ,ㄹ 받았다. 춤이 대단히 중요한 작품은 아니나, 색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작품의 화법과 톤에 맞는 연기톤을 (촬영 전에) 미리 정했다. 현실보다 톤이 몇 단계 더 높이 있으나 그 과장된 호흡이 무한대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만화 같은) 세계에서는 (캐릭터가) 실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류승룡 선배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리딩 할 때 서로 착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허설 자제, 생생한 웃음 담고자...웃참 힘들었죠"
생생한 웃음을 담기 위해 다른 작품과 달리 리허설은 자제했다. 안재홍은 “(배우들의) 신선한 느낌이 딱 붙었을 때 스파크가 생기면서 재미가 유발된다고 믿었다”고 돌이켰다. “평소 에너지를 잘 응축시켰다가 카메라가 돌면 서로 호흡을 맞췄다. 그 과정이 아주 짜릿했다. (단지 액션, 리액션이 아니라) 류승룡 선배가 연기를 조금씩 변주하면, (나도) 같이 춤을 추듯 표현을 하면서 장면들이 예상치 못한 재미를 가져온 순간이 많았고,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 작품이다.”
B급 감수성이 살아있는 작품을 찍으면서 현타(현실자각타임)도 많이 왔다. 그는 “첫 촬영 날부터 현타가 왔다”고 돌이켰다. “촬영 첫날 찍은 장면이 한강 둔치에서 닭강정 헬맷을 쓴 민아씨 역 배우에게 고백중이 물엿을 발라주는 장면이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누가 볼까봐 신경 쓰이기도 했다. 심지어 옆에 한강 둔치에 서울시 홍보영상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이 신기하고, 그들도 우리를 신기해하는 상황이었다.”
고백중의 전 여자 친구이자 맛 칼럼니스트 '홍차'를 연기한 ‘오징어 게임’이 낳은 월드스타 정호연과 연기한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홍차의 첫 대사가 ‘넌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니까’인데, 그 대사를 치던 호연씨의 눈을 보는데,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고 돌이켰다.
“예기치 못한, 코미디가 생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장면을 찍을 때 지금껏 어디서도 본적 없는 뭔가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차가 제 배를 잡으면서 ‘뱃살 다 어디 갔지' 하는 장면도 못 잊을 것 같다.” 참고로 그 뱃살은 실제 안재홍의 뱃살이 아니고, 특수분장을 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닭강정’ 9화에서 ‘백정닭강정 4인방’을 비롯해 유인원 박사(유승목 분)와 그의 ‘노안’ 조카 유태만(정승길 분) 그리고 최선만과 고백중이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을 찍을 때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 꽤나 했다.
안재홍은 “백정닭강정 4인방이 온 세트를 휘젓고 다니는 가운데 저는 무당벌레처럼 생긴 썬더와 대치를 벌인다. 개인적으로 유인원 박사의 고통스러운 웨이브를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순간 어딜 봐도 웃음 지뢰밭이었다. 모두들 다 다 진지하고 절박하게 연기해서 더 그랬다”고 돌이켰다.
“웃음이 목젖까지 올라올 때면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류승룡 선배의 눈을 보다가 웃음이 터질 것 같으면 남몰래 미간을 봤다. 정호연 배우와 류승룡 선배 이렇게 셋이 하는 장면도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호연씨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도 웃음을 참고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웃음이 전염될까봐) 시선을 돌리면 류승룡 선배가 있었다. 정말로 힘겹게 촬영을 이어갔다.”
웃음을 참지못해 NG를 낼까 봐 두려웠던 가장 큰 이유를 묻자 “미안함을 넘어서 이 웃긴 상황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컸다”며 “그래서 (류승룡의) 미간을 봤다. 유인원 박사는 인중을 봤다. 유인원 박사와 처음 대치하는 장면의 경우 리허실 없이 슛 들어가서 눈앞에서 처음 그 웨이브를 봤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컷 하면 다 웃고 슛하면 서로 집중했다. 10회에서 유인원 박사가 봉고차에 타서 고개를 흔들면서,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인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를 부르는 장면에선 이병헌 감독마저도 거의 울듯이 웃음을 참아냈다.”
안재홍은 최근 영화 감독들이 선정하는 ‘디릭터스 컷 어워즈’에서 ‘마스크걸’ 주오남 캐릭터로 올해의 남자배우상을 수상했다. 그는 “감독님들의 칭찬을 받아서 벅찬 마음이 들었다”며 기뻐했다. 지난 1년간 영화 ‘리바운드’부터 ‘마스크걸’ ‘LTNS’그리고 ‘닭강정’까지 각기 다른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모두 다 호평을 받았다는 지적에는 “온마음을 다해 임한 작품이 사랑을 받아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만날지 모르겠으나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하고, 다양한 감정을 깊이 있게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과거에 비해) 배우로서 기분 좋은 책임감을 느낀다. 매 작품, 그 캐릭터와 한 시간이 소중하고, 그 시간과 경험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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