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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운의 혁신탐구] 中企 혁신성장을 위한 은행의 역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1 18:02

수정 2024.03.21 18:02

혁신적 중소기업일수록
리스크 높아 대출 못받아
은행 영업관행 깨야 생존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코로나19 이후 은행이 막대한 이자이익을 올리며 논란거리가 되었다. 5대 은행의 작년 이자이익은 41조3878억원에 달해 총영업이익의 93.4%를 차지한다. 글로벌 100대 은행의 영업이익에서 이자이익의 평균 비중이 60%가량인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은행이 얼마나 예대마진에 의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은행의 과다한 이자이익은 외부요인에 의한 횡재성 이득(windfall gain)에 속한다. 정부로부터 여·수신의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은 소수의 은행이 시장을 지배하고 고금리에 편승한 덕분에 초과수익을 올렸다.
'이자장사'로 흥청망청 '돈잔치'한다는 비난이 거세지자 은행들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대출이자의 일부를 돌려주기로 했다. 약 187만명에게 평균 85만원씩 지급하기로 해 총 1조6000억원의 이자가 환급될 예정이다. 취약차주의 금융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것에 초점을 둔 현행 은행권의 상생금융에서 중소기업은 도외시되고 있다. 중소기업도 대출금 증가와 고금리로 인해 이자 부담이 가중되었다. 중소기업의 은행대출 잔액은 2019년 초 674조원에서 2023년 말 1000조원으로 급증했다. 대출금리가 2~3%p 오르면 중소기업의 이자비용 부담은 20조~30조원 늘어나는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금융애로 실태조사에서 가장 절실한 금융지원 과제로 '금리부담 완화'가 꼽혔다.

전통적으로 은행의 역할은 예금을 기업에 대출해 생산적 용도로 투자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기업이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경제개발을 추진하던 시기에 은행은 국민이 저축한 돈을 기업에 환류시켜 산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지금은 은행이 건전성과 수익성을 우선시해 기업 대출에 소극적이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은 재무제표, 물적담보, 신용점수 중심의 정량적 평가로 심사한다. 이런 기준들은 후행적이라 미래 성장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기술력과 잠재성은 유망하지만,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점수가 낮은 중소기업은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렵다. 혁신적 중소기업일수록 리스크가 높게 평가되어 대출을 못 받는다. 은행의 보수적 영업관행이 중소기업의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기침체기에 나타난다. 경기침체로 중소기업의 유동성이 부족해지면 은행은 리스크 관리라는 명분을 내세워 오히려 신규 대출을 줄이거나 심지어 기존 대출을 회수한다. 이런 연유로 은행이 '비 올 때 우산을 걷어간다'는 비난을 산다. 다른 은행이 먼저 대출금을 회수하면 부실을 떠안을까 두려워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자금을 거둬들여 중소기업 자금난을 악화시킨다. 은행들이 기업의 자금수요와 역행하며 무차별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옥석을 구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금융시장을 보완해 민간은행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에 정책금융기관이 자금을 제공하지만, 예산의 한계로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다. 중소기업의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보증제도를 운용하지만, 은행은 보증부대출에 안주해 중소기업 신용평가 능력을 키우지 않는다. 안전금융에 길들여진 은행들이 글로벌 수준의 역량과 경쟁력을 키울 리 만무하다. 우리나라 은행이 해외시장에 진출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한국형 이자장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진입장벽과 고금리에 안주해 변화를 거부하면 은행의 미래도 암울하다. 모바일뱅킹 확산 추세에 따라 은행 지점은 계속 줄고 있다. 앞으로 분명히 은행업은 개방될 것이며, 첨단 기법으로 무장한 글로벌 핀테크가 밀려오면 우리 은행은 도태되는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
이커머스 시장을 뒤흔드는 중국 직구 앱의 진격이 은행업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은행의 경쟁력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라도 은행이 중소기업의 혁신성장을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이 성장해 우리 경제도 저성장 기조를 탈피할 수 있고, 은행도 글로벌 금융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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