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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가방 멘 반가운 손님… 그린닥터스, 안창마을서 의료봉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4 19:16

수정 2024.03.24 19:16

온종합병원 의료진 등 100여명
물리치료 등 200건 넘게 무료 진료
정근 이사장 "대도시 달동네 등
국내 의료 낙후지역서 집중 봉사"
그린닥터스재단이 지난 23일 오후 부산의 대표적인 '산만디' 안창마을을 찾아 의료봉사활동을 펼쳐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린닥터스재단이 지난 23일 오후 부산의 대표적인 '산만디' 안창마을을 찾아 의료봉사활동을 펼쳐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23일 부산 안창마을 의료봉사활동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린닥터스 제공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오른쪽)이 지난 23일 부산 안창마을 의료봉사활동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린닥터스 제공

보건복지부 등록 그린닥터스재단이 부산 온종합병원 의료진 등과 함께 주말인 23일 오후 부산의 대표적인 '산만디' 안창마을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쳐 미담을 낳았다.

이날 의료봉사에서는 전직 소방관이 나서 심폐소생술과 최근 마을에 자주 출몰하는 멧돼지 대처요령 등을 주민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린닥터스재단과 온종합병원은 이날 부산 동구와 부산진구가 걸쳐진 안창마을에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료 의료봉사를 실시했다.

안과의사인 정근 그린닥터스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정형외과전문의 김윤준 부원장·응급실 근무 외과전문의 전창원 과장, 신경외과 전문의 이명기 부원장 등 온종합병원 의료진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주희정 원장(그린닥터스 회원) 등 의사 5명과 정복선 이사·주연희 부장·김옥이 팀장·이수현·하정은·이정옥 수간호사 등 온종합병원 간호사 13명, 물리치료사 3명이 의료봉사에 나섰다. 김승희 부이사장과 박명순 사무총장 등 그린닥터스 임원과 회원 60여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의료봉사단은 이날 주로 나이 드신 마을 주민 100여명에게 외래진료와 더불어 수액처방과 물리치료 등 200건 넘게 무료진료를 했다.

신경외과 임시진료실을 찾아온 할머니 한분은 "5년 전부터 계속 손 떨림 증상이 계속되고 있는데, 주변에서 다들 파킨슨병일지 모른다는 말에 두려워서 그동안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파킨슨은 절대 아니고, 본태성 떨림"이라는 이명기 부원장의 진단에 할머니는 안도하면서 함박 미소를 지었다.

의료봉사에 참여한 김윤준 부원장은 "그동안 병원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에게만 신경을 써왔는데, 이번 행사에서 여러 사정으로 제때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어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의료봉사 활동에 동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온종합병원 김윤준·이명기 부원장과 전창원 과장 등 의료진은 고령이나 척추수술 등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주민 3명의 집을 직접 방문해 왕진했다. 거동이 불편하여 수년째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던 올해 90세 A할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의료진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사람이 그리웠던 할아버지는 며칠 전 의료봉사단이 집을 방문할 것이라는 이웃의 얘기에 '너무도 고맙다'며 울음까지 터뜨렸다고 한다.

일흔다섯 B할아버지 사연은 더 기막혔다. 영어와 일어, 중국어 등의 통역이 가능한 엘리트로 한때 여행 가이드 일을 해온 그는 5년 전 사별한 부인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 허름하고 낡은 집 안에 빈소를 차려놓고 있어 봉사단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는 복지관에서 주는 도시락이나 음식도 먹지 않고 부인 빈소 앞에 먼저 올려놓는단다. 그러다가 곰팡이가 필 만큼 음식이 상해서야 비로소 본인이 먹는다고 했다. B할아버지는 그게 앞서간 부인에 대한 예의라고 여긴단다. 간암에다 백내장으로 인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종종 길을 잃는다는 B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정근 이사장이 이달 말 정근안과병원에서 무료로 백내장 수술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한편 이번 안창마을 의료봉사에서는 무료진료 외에, 응급상황 시 의료낙후지역에서 주민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심폐소생술과 하임리히법, 야생 멧돼지 대피요령도 가르쳤다. 김진홍 부산 동구청장과 김재운 부산시의원이 심폐소생술과 음식물 등으로 기도가 막힌 응급환자에게 펼치는 하임리히법 실습에 직접 동참해 주민들의 관심을 높였다.


전직 소방관으로서 이날 심폐소생술 강사로 나선 그린닥터스 최찬일 이사는 "심정지는 분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이므로, 이 마을에서 응급의료기관까지 이동이 용이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평소 주민들 스스로 심폐소생술이나 하임리히법 같은 응급처치요령을 익혀두는 게 좋다"며 "특히 요즘 들어 이곳에 야생 멧돼지들의 출몰도 잦으므로 멧돼지 조우 시 행동요령도 알아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린닥터스재단은 이날 무료 진료와 함께 비빔밥, 돈가스와 햄버거 등 주민 식사대접, 생계가 어려운 가정에 라면·김·식용유 등 생활필수품과 파스 등 비상약품이 든 응급키트 100개를 전달했다.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은 "그린닥터스는 그동안 지진 등 자연재해 지역과 개발도상국 등 해외 의료봉사 활동에 집중해왔으나 앞으로는 섬이나 산속 오지,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대도시 달동네 등 국내 의료 낙후지역을 중심으로 왕진 등 무료 의료봉사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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