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의 톡톡 이 와인
[파이낸셜뉴스] 잘 만든 고급 버건디 와인인 줄 알았다. 맑고 가벼운 질감에 고급스런 과실향, 우아한 산미까지 부르고뉴 꼬뜨 도르의 가장 우아한 와인 뮈지니의 느낌을 다 갖췄다. 게다가 긴 피니시까지 아주 일품이다. 가르나차, 까리냥으로 이렇게 하늘거리며 우아한 와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화이트 와인도 만만치 않다. 가르나차 블랑카와 마카베우로 빚어내는 고품질 와인은 강한 개성과 우아함으로 프리오랏 화이트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스페인 동북부 프리오랏에서는 품종의 상식을 뒤집는 와인이 종종 나온다.
며칠 전 하이트진로가 수입하는 스페인 프리오랏(Priorat) 지방의 ‘마스 덴 질(Mas den Gil)’ 와인을 경험했다.
마스 덴 질의 오너 마르타 로비라 카르보넬(Marta Rovira Carbonell)은 극한의 떼루아를 먼저 언급했다. 그는 “프리오랏은 해발 1000m, 1300m의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곳으로 가운데에는 작은 구릉들이 마치 머핀처럼 우뚝우뚝 솟아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동남쪽 지중해 방향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북서쪽의 차가운 바람과 만나는 중요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프리오랏의 연간 강수량이 300mm에 불과해 포도 나무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게 좋은 와인이 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고지대임에도 연간 강수량이 극히 적은데다 저녁에 찬바람이 산도를 높여줘 최고의 포도가 나는 천혜의 환경이라는 것이다.
프리오랏은 과거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고 있을 때 가톨릭 세계가 가장 먼저 수복한 곳이었다. 1163년 이 곳에 스칼라 데이라는 수도원이 생기고, 남프랑스에 속하게 되면서 포도나무 품종도 론 지방의 묘목이 심어졌다. 가르나차(Garnatxa)와 까리냥(Carinyena)이 대표 품종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다. 화이트 품종은 10%도 안되지만 가르나차 블랑카(Garnatxa Blanca)와 마카베우(Macabeu)가 있다.
마스 덴 질은 프리오랏에서 가장 오래된 2개 와이너리 가문 중 하나다. 카르보넬 가문은 1998년 와이너리를 인수해 원래 이름인 마스 덴 질로 바꾸고 지금까지 소유권을 이어오고 있다. 새롭게 주인이 된 이후 줄곧 인근 토지를 매입해 현재 125ha에 달하는 거대한 땅을 소유하고 있다. 이 중 35ha에서만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크게는 5개 밸리(밸뮨트 델 프리오랏, 라 코마 밸리, 올리브 트리 할로우, 그리뇨 밸리, 사스 밸리)에 위치해 있으며 작게는 경사면에 따라 53개 소구역으로 구분된다. 모두 해발 350m의 고지대다. 토양은 레드 품종은 리코렐라(llicorella)라 불리는 점판암이 대부분이며 화이트 와인 품종은 석회암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날 선보인 와인은 코마 칼카리 2019(Coma Calcari 2019), 코마 블랑카 2018(Coma Blanca 2018), 벨문트 2019(Bellmunt 2019), 코마 벨라 2017(Coma vella 2017), 클로 폰타 2017(Clos Fonta 2017), 그랑 부이그 2016(Gran Buig 2016)로 화이트 2종, 레드 4종 등 6종이다.
■피니시가 인상적인 코마 블랑카 정말 맛있네
코마 칼카리 2019가 가장 먼저 서브됐다. 가르나차 블랑카 100% 와인으로 맑게 빛나는 옅은 노란색 와인이다. 잔에서는 열대과일 향과 약간의 풀향이 함께 어우러져 올라온다. 더운 향과 서늘한 향이 같이 있다. 이와함께 휘발향이 섞여 올라오는 것도 이채롭다. 입에 넣어보면 질감이 아주 가볍다. 산도가 미디엄 플러스 또는 하이 수준으로 좋다. 특히 미네랄 느낌이 좋으며 짭쪼름한 맛이 특징이다. 가벼운 질감에 고급진 향, 뛰어난 산도가 발랄함을 더하는 꽤 좋은 와인이다.
두 번째 와인으로 나온 코마 블랑카 2018은 긴 피니시가 정말 인상적이다. 카르보넬 가문이 인수한 후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낸 와인으로 가르나차 블랑카 40%와 마카베우 60%로 블렌딩 됐다. 마카베우는 비우라 품종의 또 다른 이름이다. 초록빛이 감도는 레몬껍질색의 와인으로 잔에서는 풀내음 향, 흰꽃 향, 화장품 향 등 마카베우 품종의 특징이 다 묻어 올라온다. 과실향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입에 넣어보면 반전이 일어난다. 아주 짙은 농축된 과실 향과 꽃 향이 고급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미끌미끌한 유질감이 느껴지는 무거운 질감의 와인이지만 산도가 꽤 좋다. 특히 입에서 와인이 사라진 후 길게 이어지는 피니시는 진짜 압권이다. 시간이 지나면 짭쪼름한 맛까지 더해진다. 마카베우의 고급스러운 장점과 가르나차 블랑카의 산도가 잘 어우러진 상당한 품질의 와인이다.
■피노 누아보다 더 버건디스러운 가르나차
레드는 첫 번째 와인으로 벨문트가 나왔다. 가르나차 네그리(Garnatxa Negre) 65%, 까리냥 30%,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5%의 와인이다. 벨문트 밸리 북동향 경사지에서 나오는 와인으로 옅은 체리색이 그냥 피노 누아(Pinot Noir) 와인이다. 잔에 코를 가까이 하면 신선한 과실 향에 좋은 산도의 와인에서 나는 특유의 향이 올라온다. 이에더해 약간의 스모키한 느낌이 있다. 약간 더운 기후에서 나는 특유의 그을린 향이다. 입에 흘려보면 질감이 아주 가볍다. 섬세하게 잘 만든 피노 누아 와인이 입속에 들어앉을 때 딱 그 느낌이다. 산도는 미디엄 하이 정도다. 이어 스모키함이 더해진 약간의 타닌이 피니시로 이어진다.
이어 코마 벨라 2017이 잔에 따라졌다. 가르나차 네그리 50%, 가르나차 펠루다(Garnatxa Peluda) 20%, 까리냥 20%, 시라(Syrah) 10%의 블렌딩으로 발 데 라 코마의 가장 오래된 코마 벨라의 싱글 빈야드 와인이다. 가르나차 펠루다는 잎사귀에 털이 많은 품종으로 컬러가 약하지만 산도가 워낙 좋아 와인에 발랄함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피노 누아처럼 맑고 옅은 체리빛 와인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외관이 굉장히 좋다. 잔에서 올라오는 향은 젖은 숲길의 향과 신선한 향이다. 그런데 과실의 향이 살집이 더 좋아졌다. 그러나 잔을 기울이면 입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역시 피노 누아 같이 가볍다. 산도는 미디엄 하이 수준으로 좋은 편이며 피니시도 한두숨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프리오랏의 보석같은 클로 폰타 꼭 한번 경험해볼만
클로 폰타 2017은 프리오랏 DOQ 체제에서 그랑크뤼에 해당하는 와인이다. 가르나차 네그리 50%, 가르나차 펠루다 20%, 까리냥 30%의 블렌딩이다. 마스 덴 질이 보유한 포도 밭 중 가장 오래된 수령의 나무에서 나는 포도를 사용한다. 카르보넬 가문에서 ‘할머니’라 부르는 와인이다. 잔에 따라진 와인은 좀 더 진한 검붉은 체리 색상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잔에서 올라오는 향부터 완전히 다르다. 붉은 색 과일을 졸인듯 아주 진한 향인데 한데 뭉친 덩어리 같은 향이 아니라 맑고 깊다. 그리고 약간의 담뱃잎 향과 커피, 낙엽 향도 있다. 입에 흘려보니 과실향이 압권이다. 가장 좋은 포도만 골라 진하지 않게 뽑아냈다. 질감이 아주 가벼운데 의외로 타닌은 존재감이 꽤 있다. 산도도 하이 수준으로 아주 높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선한 과실향과 타닌이 계속 머물며 향을 뿜어내는 피니시다. 아주 길게 이어진다.
마지막 와인은 마스 덴 질의 최상위에 위치한 그랑 부이그 2016이다. 가장 좋은 포도가 나는 해에만 생산되는 특급 와인으로 가르나차 65%, 까리냥 35% 블렌딩이다. 마스 덴 질에서 1998년, 2004년과 함께 단 세 번만 생산됐다. 잔에 따라진 와인은 아주 진한 검붉은 색이다. 와인이 잔에 내려앉자 과실 향보다 여러 향신료 향이 먼저 퍼진다. 잔에 코를 가까이하면 오크가 아닌 약간의 풋내가 있는 나무 향, 민트 향이 느껴지고 스월링을 할수록 과실 향이 살아난다. 질감도 달라졌다. 입에 흘려보면 미디엄이나 미디엄 플러스 바디로 제법 살이 붙어있다. 산도가 아주 높고 피니시가 길다. 그러나 향신료와 과실 향과 어우러진 맛이 아직 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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