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5개에 1만원 수준 "저렴"
유튜브로 맛집 알려지면서
모루인형 매단 MZ도 찾아와
2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농수산물시장에선 시장 상인들이 저마다 큰 목소리로 과일을 팔고 있었다. 딸기는 한 팩에 4000원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3개씩 묶어 사면 1만원이었다.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경동시장에서 청량리농수산물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이날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 장바구니를 끌고 장을 보러 온 노인뿐 아니라 '모루인형(털실이 감긴 철사로 만든 인형으로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을 가방에 매단 청년들까지 시장을 찾은 사람은 각양각색이었다.
이처럼 길어지는 고물가 상황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통시장이 모여든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특히 경동시장과 청량리농축수산물시장에 숨어 있던 가성비 맛집들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청년들의 시장 방문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한다.
사과 9개 2만원 수준
이날 시장에서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가격표였다.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가 3000원 수준인 애호박은 이곳에선 2000원이었다.
'프루트플레이션(프루트+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가격이 급등한 과일이 특히 저렴했다.
사과의 경우 대체로 한무더기(약 9개)에 2만원 수준이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지난달 하순 집계 자료 기준 사과 10개당 소매가격이 2만4726원인데 비해 매우 저렴했다. 하품(下品)의 경우 한 무더기에 1만원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청과를 팔아왔다는 정모씨(49)는 "중매인한테 바로 (물건을) 받아오고 중간 마진을 안 거치니까 싼 편"이라며 "그래도 박리다매로 팔아서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애호박은 2500원에는 팔아야 할 물건인데 2000원에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렴한 물가에 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늘고 있고 한다.
손님으로 온 홍모씨(57)는 "원래 찾던 시장이지만 예전엔 두세달에 한번 오는 정도였다면 물가가 오른 지금은 한달에 한번은 온다"며 "여기가 딴 곳보다 싸다"고 언급했다. 그는 평소 한번 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과일과 채소를 5만원어치 사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면 딴 곳보다 20% 정도 싸다"고 덧붙였다.
맛집 유행에 MZ도 몰려
급등한 물가에 '가성비'를 따지는 것은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차이라면 경동시장과 청량리먹자골목에 위치한 '가성비 맛집'으로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나 SNS를 통해 시장의 내 여러 가성비 맛집이 소개되면서 해당 식당에는 매일 같이 긴 줄이 선다고 한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길 줄을 서 1~2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가격을 생각해 참고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이날은 평일임에도 시장 내 가성비 맛집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한 순대집의 경우 순대 1㎏에 4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SNS에서 유명세를 탔고 이후 매일 식당 앞은 긴 줄이 선다고 한다.
또 다른 가성비 식당으로 알려진 통닭집 앞도 인근 상인이 조금씩 자리를 피해서 가판을 가로막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사람이 늘어섰다.
동네 주민 남모씨(45)는 "원래 줄 서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는데 이제는 통닭 한번 먹으려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며 "시장이 원래 저렴한 가격에 자주 찾는 곳이었는데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만난 이정우씨(27)도 "가격이 저렴해 일주일에 한두번은 장보러 오는 편인데 최근에는 사람들이 특히 많이 오는 것 같다"며 "주말에는 사람들이 특히 더 많이 줄을 선다"고 했다. 이어 "저녁 5시가 넘으면 대체로 물건을 20~30%가량 더 저렴한 가격에 파니까 사람이 더 많다"고 전했다.
상인들도 변화를 크게 느끼고 있었다. 시장상인 A씨는 "유튜브로 알려진 맛집이 늘면서 시장을 찾는 젊은 사람이 많아졌다. '무슨 무슨 가게 어느 쪽이냐'며 많이 물어본다"며 "사람들이 식당에 찾아왔다가 가면서 과일도 하나씩은 사가니까 손님도 늘어난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상인은 랜드마크 맛집의 낙수효과가 제한적이며 원가가 오른 영향으로 큰 이득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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