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성폭력 피해 사건 보고서 공개
【파이낸셜뉴스 광주=황태종 기자】5·18민주화운동 당시 일부 계엄군이 붙잡힌 여성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옷을 벗기거나 연행·구금된 여성을 성폭행한 만행의 실상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2일 공개한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 피해 사건 개별 보고서를 통해서다.
앞서 조사위는 5·18 기간 동안 계엄군 또는 수사기관이 자행한 성범죄 52건을 취합, 이 중 19건을 추려 16건에 대해 '진상 규명'을 결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A 피해자의 경우 5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수창초교 앞에서 계엄군에 의해 강제 탈의 등 성추행 수모를 겪었다. 이 피해자는 7공수부대 33대대 한 지역대에 의해 이 같은 사건을 겪었다.
당시 해당 부대 지역대장이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일부러 수치심을 일으켜 시위에 참여할 수 없도록 관련 지시를 내린 정황도 포착했다.
조사위는 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5·18당시 계엄군이 여성에 저지른 최초의 성범죄 피해 상징성을 갖는다고도 의미를 부여했다.
B 피해자의 경우 5월 19일 대인동 공용터미널에서 강제 탈의 수모를 겪은 데다 같은 해 10월 자신의 자취방으로 찾아온 수사관에 의해 성추행까지 당했다.
강간 또는 강간 미수 피해 진술도 잇따랐다. 피해자들은 계엄군의 강간 행위가 5월 19일 도심 시위 진압 작전 과정에서부터 시작돼 이후 계엄군이 외곽으로 물러난 21일부터 26일, 항쟁이 끝나는 같은 달 27일까지도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사례를 모으면 모두 9건에 달한다.
구금·조사 과정에서의 성고문 피해 사실도 확인됐다. 광산경찰서 유치장에 38일간 수감돼있던 C 피해자는 잦은 하혈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받지 못한 점을 호소했으며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이 모멸감을 주는 성적 폭언과 기합을 수시로 줬다고 진술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당시 상황을 겪은 이후 외상 고통과 함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당시 정조 관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해한 경우, 유산을 한 경험, 산부인과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아온 사례가 피해자들에게서 확인됐다.
조사 한계도 있었다. D 피해자의 경우 5월 19일 오후 4시께 광주 한 거리에서 군용트럭에 태워져 외곽 야산으로 끌려간 뒤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진료를 받거나 시설에 입소된 사실도 확인됐다.
추가 조사 과정에서 군용 트럭으로 여성을 납치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제보자 진술이 확보됐지만, 작전 상황에서 군인들이 민간인 여성을 납치해 강간한 일탈 행위에 대해 추가 사실 관계나 경위 확인은 어려웠다.
다만 조사위는 이 피해자가 1996년 서울중앙지검 조사 당시부터 관련 피해 사실을 꾸준히 증언해온 점, 목격자 진술이 일관적인 점에 따라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해 진상 규명을 결정했다.
앞서 보고서를 검토한 전원위원 중 소수는 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지적하기도 했다.
일부 전원위원은 전날 별도 보도자료를 내고 △진상규명 결정된 사건 16건 중 13건이 표결로서 진상 규명 결정 처리된 점 △해당 13건에 대해 심의 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 이론을 채택한 점 △피해 현장에 있었던 계엄군에게 스스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는 책임을 부여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조사위는 오는 15일까지 이번 보고서에 대한 광주 시민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종합된 의견을 대정부 권고안 등과 함께 묶어 오는 6월 발표되는 대국민 종합 보고서에 첨부할 예정이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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