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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영조는 이중탕(理中湯)에 OO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6 06:00

수정 2024.04.06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이중탕은 인삼, 백출, 포건강, 감초로 구성된 처방인데(사진은 이중탕 재료), 영조는 이중탕(理中湯)으로 건강을 회복해서 이중건공탕(理中建功湯)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이중탕은 인삼, 백출, 포건강, 감초로 구성된 처방인데(사진은 이중탕 재료), 영조는 이중탕(理中湯)으로 건강을 회복해서 이중건공탕(理中建功湯)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때는 조선, 1758년 음력 12월 한겨울에 영조는 배가 사르르 아프면서 설사기가 있었다. 또한 몸에 냉기가 있었고 추위와 바람을 싫어했다. 임금의 환후로 인해서 약방의 세 제조가 입직을 했다. 의관들은 언제라도 부르면 달려올 수 있도록 차비하여 대령했다.


제조들은 진맥을 하고서는 “맥후가 약하고 침합니다. 아마도 최근 찬바람을 쏘이면서 행차를 하신 후 몸에 한기가 들어와 머물게 된 것이 원인인 듯 하옵니다.”라고 하면서 이중탕(理中湯)을 끓여서 올렸다.

이중탕은 인삼, 백출, 포건강, 감초로 구성된 처방으로 복통이 있으면서 설사기가 있는 경우에 치료하는 처방이다. 또한 한기를 없애며 기운을 북돋고 속을 편하게 하는 공효가 있다.

차도가 없는 듯하자 다음 날 다시 제조는 “이중탕은 한증(寒症)에 적합한 처방입니다. 하지만 지금 병증은 아마도 풍한(風寒)에 감하여 나타나는 외감(外感)과 함께 손발도 서늘하고 복통이 나타나는 내상(內傷)을 겸하고 계시기에 오적산이 적합합니다.”라고 하면서 오적산(五積散)을 달여 올렸다.

오적산은 냉적(冷積) 뿐만 아니라 혈적(血積), 기적(氣積), 담적(痰積), 식적(食積) 등 오적(五積)이 쌓인 것을 제거하는 처방이다. 냉증을 기본으로 해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증을 광범위하게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이다.

오적산이 올라오자 영조가 물었다. “이 처방에 인삼이 들어가 있는가?” 그러자 제조는 “오적산에는 인삼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영조는 미덥지 못한 표정이었다. 사실 영조는 인삼을 최고의 약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다음날 약방에서는 새로운 처방을 올렸다.

“이 처방은 인삼양위탕(人蔘養胃湯)이옵니다.”라고 했다.

처방에 약재 이름이 들어간 것은 그 약재가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의미다. 인삼양위탕은 감기 기운이 있으면서 동시에 냉증이 있으면서 두통이나 관절통, 근육통이 나타날 때 사용하는 처방이다.

영조는 인삼이 들어있다는 인삼양위탕을 이틀 연속해서 복용했다. 약방에서는 안도를 했다.

그러나 “내가 최근 이중탕, 오적산, 인삼양위탕을 연속해서 복용해 봤지만 그 중에서도 이중탕이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앞으로 이중탕을 올리도록 하라.”라고 했다.

이처럼 영조는 처방이나 음식을 복용하는데 있어서 까탈스러워 비위를 맞추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약방에서는 별말이 없이 명에 따라서 이중탕을 올리기 시작했다.

며칠 후 약방에서 입진해서 탕약을 올리는 도중 원손(元孫, 왕세자의 적장자)이 입시했다. 원손은 당시 8살이었다.

원손은 탕약을 마시는 영조에게 물었다. “어디가 편찮으시기에 탕약을 드시는 겁니까?”
그러자 영조는 원손에게 다시 되물었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이 탕약의 이름은 이중탕(理中湯)이란 처방이다. 처방이름을 보면 어떤 효능이 있을 것 같으냐?”
그러자 원손은 “소자의 생각으로는 필시 리중탕(利中湯)으로 여겼으나 이중탕(理中湯)임을 알고 놀랐습니다. 리중탕(利中湯)이라면 속을 이롭게 할 뿐이지만, 이중탕(理中湯)이라면 속을 이치에 맞도록 다스리는 탕이 아니겠습니다. 이를 보면 임금이 백성을 다스릴 때도 단지 곡식 등 먹을 것만 줘서 일시적으로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스스로 이치에 맞도록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찾아 준다면 이것이 바로 이중탕의 뜻이 아닐까 합니다.”라고 답했다.

영조는 물론이고 제조와 약방의 의관들로 깜짝 놀랐다. 자신들도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방해(方解)였기 때문이다. 영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이어서 묻기를 “요즘 소학을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첫머리 부분을 암송해 보거라.”라고 했다.

그러자 원손이 암송하기 시작했다. 구절이 분명하고 목소리와 운율이 낭랑했다. 영조는 그때서야 기뻐했다.

3일째 이중탕이 올라왔다. 약방의 의관과 함께 입진한 제조가 “환후는 좀 어떠시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영조는 내시에게 어젯밤 시각을 물어보는 듯하더니 “어젯밤 3경(更) 1점(點)에 잠들지 않고 깨어 있었는데 불구하고 냉기가 있어서 침상에서 이불을 덮고 있을 정도였으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라고 했다. 3경 1점은 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제조와 의관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영조는 “그래도 이중탕을 복용하면 속에서부터 온기가 되살아나는 듯하고 편하다.”라고 했다. 제조와 의관들은 다행스럽게 여겼다.

이중탕은 5일째 올라왔다. 영조의 환후는 조금 나아졌다.

내의원 제조와 의관들은 진찰을 하고 나서 “맥후는 힘이 생겨 유력하고 냉증에 의한 복징(腹徵)은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이중탕을 거르지 않으시고 꾸준하게 복용하신 결과로 사료됩니다.”라고 했다.

제조와 의관들은 혹시나 상을 내려주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영조는 웃으면서 “지금 보니 내가 이렇게 쾌차한 것을 보면 요즘 복용하고 있는 이중탕의 공(功)임이 분명하다. 어찌 사람만 벼슬을 하란 법이 있겠는가? 나는 이중탕에 건강하게 하는 공을 세웠다는 의미로 건공(建功)이라는 벼슬을 내리도록 하겠다. 짐이 복용하는 이중탕에 이중건공탕(理中建功湯)이라는 이름을 하사하노라.”라고 했다.

제조들과 약방의 의관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중탕은 자신들이 처방을 한 것이 아닌가? 벼슬이나 상을 내리려면 자신에게 내려야 하는데, 어이없이 탕약이 벼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임금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말이다.

이후 거의 며칠에 걸쳐서 이중건공탕을 올렸고, 영조에게 최근 나타났던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이중건공탕은 줄여서 건공탕(建功湯)이라고 불렀다. 영조는 재임기간 동안 훙서할 때까지 수시로 인삼이 들어간 건공탕을 복용했다. 그래서일까 영조는 82세까지 장수했다.

* 제목의 ○○은 ‘건공(建功)’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영조실록> ○ 영조 34년 1758년 12월 11일. 上候靡寧, 藥房三提調入直侍講院。 醫官差備待令, 朝廷庭候. (임금이 환후가 있어 약방의 세 제조가 시강원에 입직하고 의관을 차비하여 대령하고 조정에서 정후하였다.)
○ 12월 12일. 藥房煎進理中湯. (약방에서 이중탕을 끓여서 올렸다.)
○ 12월 13일. 藥房煎進五積散. (약방에서 오적산을 끓여서 올렸다.)
○ 12월 14일. 藥房煎進人蔘養胃湯. (약방에서 인삼양위탕을 끓여서 올렸다.)
○ 12월 15일. 藥房煎進人蔘養胃湯. (약방에서 인삼양위탕을 끓여서 올렸다.)
○ 12월 16일. 藥房煎進理中湯. (약방에서 이중탕을 끓여서 올렸다.)
○ 12월 17일. 藥房煎進理中湯. 藥房入診時, 元孫入侍. 上命誦小學題辭, 句絶分明, 聲韻琅琅, 上喜之. (약방에서 이중탕을 끓여서 올렸다. 약방에서 입진할 때 원손이 입시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소학 제사를 외우게 하였는데, 구절이 분명하고 성운이 낭랑하니 임금이 기뻐하였다.)
○ 12월 18일. 藥房煎進理中湯, 王世子入侍. 上命中官, 數更籌以奏, 乃三更一點. 上曰: “此是起寢時也, 而猶貼床褥, 曷勝哀愴?” 仍命注書, 往孝昭殿享事畢後來奏. (약방에서 이중탕을 끓여서 올렸고, 왕세자가 입시하였다. 임금이 중관에게 명하여 경주를 헤아려서 아뢰게 하였는데, 바로 3경 1점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시각이 기침할 때인데도, 오히려 침상에서 이불을 덮고 있으니, 어찌 서글픈 마음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하고 이어서 주서에게 명하여 효소전에 가서 향사가 끝난 뒤에 와서 아뢰게 하였다.)
○ 12월 21일. 上候少愈. 上曰: “此理中湯之功也. 賜名理中湯曰 ‘理中建功湯’” (임금의 환후가 조금 나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이중탕의 공이다.
이중탕의 이름을 이중건공탕이라고 하사하겠다.”라고 하였다.
)
○ 12월 22일. 藥房煎進理中建功湯. (약방에서 이중건공탕을 끓여서 올렸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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