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남중국해 관련 침묵
'글로벌중추외교' 펼치며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글로벌중추외교' 펼치며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이 발언의 외교적 결례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 말처럼 한국은 남중국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 말고 조용히 있어야만 하나? 남중국해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말고 한중 관계만 잘 관리하면 되나?
지난해 8월 이후 필리핀 해경과 보급선의 필리핀 근해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 대한 접근 차단을 위해 중국이 계속 반복해서 물대포 공격, 의도적 선박충돌, 외교적 위협을 하면서 남중국해 정세가 급박해지고 있다. 국제법적으로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지만 힘으로 필리핀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도저히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은 급기야 이번 주 예정된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에 긴급 합류, 3국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대응을 모색하기로 했다.
2013년부터 지난 10년간 중국이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남사군도) 암초지역을 매립·군사화한 이후 남중국해 군사적 역학구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남중국해 북쪽 파라셀군도(중국명 서사군도)의 기존 군사기지에 추가해 남쪽에 위치한 스프래틀리군도 3개 인공섬에 대형 군사기지를 새로 만들고 중국 해군, 해경 및 해상 민병대를 상주시켰다.
이에 따라 과거 남중국해 북쪽 일부에만 국한되었던 중국의 활동반경은 대폭 넓어져 이제 남중국해 전 수역과 공역에서 상시적 감시·작전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중국과 무력충돌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이들 군사기지를 무력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국이 이들 군사기지를 거점으로 최근 필리핀만 콕 집어 강압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미국이 호주에 핵추진잠수함을 제공키로 약속하고, 미국에 이어 일본도 필리핀에 군 병력을 순환 배치하려는 이유도 이러한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팽창 때문이다.
한국은 과거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한발 물러나 방관자처럼 행동했다. 남중국해 관련 국제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고 '침묵외교'로 일관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중추외교'를 추진하면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라는 분명한 입장을 정립했다. 특히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은 지난해 8월 이후 필리핀에 대한 강압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SNS에 국제법에 근거한 우려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남중국해 정책은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제 한국은 국익과 국제법에 근거해 일관된 외교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중국이 반발하는 것이 한중 관계의 '뉴노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물론 대중 관계 관리에 추가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는 중국을 배려하여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한중 양자관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인태지역 모든 국가의 경제와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이 지역 안정과 평화가 걸려있는 중대사안이자, 국제해양법 질서 유지의 문제이다. 우리와 상관없는 먼 동남아 국가들만의 문제도 결코 아니다. 안정적 해양수송로를 포함해 개방적 통상국가인 한국의 사활적 이해와 '핵심이익'이 걸려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은 여러 해 유지한 신중한 중립 입장을 최근 몇 년 새 바꿔 남해 문제에서 여러 차례 중국을 암시하거나 비난했다. 다시 한국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분위기에 휩싸여 덩달아 떠들지 않으며, 중한 관계에 불필요한 부담을 늘리는 일을 피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중국의 압박 때문에 다시 과거의 '방관자'로 돌아가야 하나. 향후 한국의 남중국해 외교는 한국이 정말 보편규범을 지키는 '글로벌 중추국가'가 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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