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사칭 피해’ 증권사들···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9 05:00

수정 2024.04.09 05:00

KR·DS투자증권 등 MTS 앱 없는 곳들 타깃
‘사칭’만으로 명예훼손 고소 안 돼...대법원 판례
불법 금투업자 확산 억제 효과 줄어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증권사나 그 소속 임직원을 사칭해 투자자들을 모으고 불건전 영업행위를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증권사들은 고소 등 조치를 취할 법적 위치를 점하고 있지 못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가 발생해야지만 명예훼손이 인정되는데, 명칭을 동일 혹은 유사하게 쓴 행위만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한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R투자증권은 지난 2월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2통의 민원 전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29일 홈페이지에 ‘사칭 투자사기 유의 안내 및 대처법’이라는 공지를 올린 후 연락이 쏟아진 셈이다.

고객들 제보 내용을 취합하면, 불법 금융투자업자로 추정되는 A업체는 텔레그램이나 네이버 밴드로 회원을 모집한 후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등록돼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으라고 요구했다.
KR투자증권은 제공하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앱이 없기 때문에 사칭임을 의심하기 힘들다는 점을 악용한 수법이다. 역시 리테일 MTS가 없는 DS투자증권도 앞서 같은 이유로 타깃이 된 바 있다.

기업공개(IPO) 공모주 배정 수요를 노리는 유형이 많았다. 통상 개인은 1~2주 정도만 받을 수 있는데, A업체는 기관 물량을 다수 배정받았으니 그 이상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속였다. 이를 미끼로 거액 입금을 유도하고, 대금 인출을 위해선 세금 문제를 해결해야 되니 또 다시 자금을 넣으라고 한다. 이후 항의를 하면 잠적하는 식이다.

KR투자증권 관계자는 “(당사는) 증권 중개 라이선스(면허)가 없는데, 이를 잘 모르는 일반투자자들은 속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현재는 해당 앱이 사라진 상태이긴 한데, 아직도 본인이 피해를 당한지 인지하지 못하는 고객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증권사 입장에서 공지 글을 게시하는 일 외에 별다른 대처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객의 경우 법무법인 등을 통해 민·형사상 고소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이 있으나, 증권사는 ‘사칭 당했다’는 사실만으론 명예훼손 혐의로 걸 수 없다.

대법원 판례가 가로 막고 있어서다. 지난 2016년 3월 내려진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건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타인의 사진, 이름, 생년월일 등을 이용한 사실만으론 해당 피해자 관련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실제 사칭으로 인해 ‘손실’이 발생했거나 실질적으로 사회적 지위나 명예가 훼손됐단 점이 인정돼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생성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칭 행위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돼있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에 따라 사칭 피해를 당한 증권사들도 투자 주의를 당부하는 데 그치고 있다. 앞서 키움증권, 삼성증권(임직원 사칭) 등도 사칭 피해를 당했다. 자산운용사도 예외는 아니다. 브이아이피(VIP)운용은 현재 홈페이지에 ‘최근 최준철 대표이사를 사칭한 계정 개설 및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금융 거래를 유도하는 등 사례가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띄워 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에만 불법 금융투자 사이트 및 게시글 약 1000건을 잡아냈다. 혐의가 구체적인 사례도 56건이었다. 투자중개(26건)가 가장 많았고 투자매매(21건), 미등록·미신고 투자자문(8건) 등이 뒤를 이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각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안내는 사실 해당 고객들만 보게 되는 탓에 확장성이 없고, 증권사가 손을 못 쓰는 상황에선 불법 업자들이 더욱 판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등이 명예훼손 사건으로 접수해 수사에 돌입한다고 해도 불법 업체들을 잡아내기도 어렵다.
대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서다. 현재로선 금감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정보 및 게시물 차단을 요청하는 방법 정도밖에 쓸 수 없다.
금감원 자체로서는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는 정도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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