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정부로부터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고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됐음에도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혼외자라는 이유로 ‘국적 비보유 판정’을 받은 20대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국적 비보유 판정 취소 소송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998년생과 2000년생인 원고들은 법적으로 혼인한 상태가 아닌 한국 국적 아버지와 중국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2001년 출생신고를 했고 정부는 그들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했다. 이후 부모는 2008년에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정부는 2009년 ‘외국인 어머니를 둔 혼외자에 대한 출생신고'라는 이유로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원고들의 기록을 말소했다. 이후 정부는 2013년과 2017년에 부모에게 원고들이 대한민국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했으나 원고들은 따르지 않았다.
다만 원고들은 주민등록증을 각각 17세에 발급받았다. 이후 성인이 된 원고들은 2019년에 이르러 법무부에 국적보유판정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이 있으면 국내에서 신분을 확인하는데는 무리가 없지만 해외여행 등을 할 경우 여권 등을 발급 받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에 원고들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국적 비보유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복수의 행정청이 원고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문서인 호적부, 가족관계등록부, 주민등록표에 원고들을 등재한 후 수년간 계속 관리해온 것은 원고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취지의 행정청의 공적 견해표명으로 볼 수 있다”며 “원고들은 행정청의 공적 견해표명을 신뢰함으로써 자신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오인해 정식 국적 취득 절차를 거칠 기회를 놓쳤다"고 판시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법원은 “원고들이 성년이 되기 전 국적취득 신고를 하지 않았던 이상 원칙적으로 국적법 제3조에 근거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급심에선 다시 판단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원고들에 대한 주민등록이 계속 유지된 이상 원고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공적인 견해표명도 계속 유지됐다고 할 것”이라며 “미성년자였던 원고들은 이를 신뢰했기 때문에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채 성인이 됐으므로 (국가가) 이러한 신뢰를 져버려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wschoi@fnnews.com 최우석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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