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금융 기자도 당할뻔한 보이스피싱 체험기[기자수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09 16:14

수정 2024.04.09 16:14

금융 기자도 당할뻔한 보이스피싱 체험기[기자수첩]

[파이낸셜뉴스] "남부지검인데요, OO년생 이승연씨 맞습니까? 작년 5월 우리은행 문래동 지점에서 계좌 개설하셨나요?"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우습게도 40여분의 시간을 쓸데없는 통화에 낭비하고 난 뒤였다. 계좌번호나 주민등록번호처럼 민감한 개인정보를 묻지 않자 경계심이 느슨했고, 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전화를 끊지 못했다. 연신 발신인을 바꿔가며 상대방은 '피해액 2억원 상당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나'를 달래도 봤다가 겁도 줬다. "그러니 개인정보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어째서 개인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까?' '입증자료를 달라는 요구엔 말을 왜 돌리지?' 여러 차례 의문점이 떠올랐지만 혹여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전화를 끊을 용기는 없었다.
기본 인적 사항을 꿰고 있는 데다 얼마 전 신분증을 분실한 사실까지 맞추자 반신반의하며 빠져들었다.

지인의 설득에 전화를 끊고 제정신이 들자 그제야 아찔했다. 글로 수없이 옮겨 적던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가 내가 될 수 있었구나. 반성하자면 내 부주의와 아둔함이 탄로 났지만 바꿔 말하면 누구나 깜빡 속을 수 있었다. 이런 심각성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지난해 2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35.4% 또 증가해 인당 평균 피해액은 1700만원 수준이다. 금융사기에 대한 전국민적 인식은 높아지는 가운데 2030 피해자도 늘며 모든 연령대가 표적이 되고 있다.

금융·통신업계의 보다 전향적인 협업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민생범죄를 근절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은행이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최대 50%를 배상해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을 당시 한 금융지주 임원은 "왜 은행만 50%를 배상해야 하냐"며 반문했다. 의도가 좋아도 누군가와 비교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으로 비화한다면 역효과다. 강제성이 가장 큰 동인이라면 정부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 추가 노력은 멈추기 마련이다.

다행히 금융당국에서는 최근 통신업계에서도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한다는 변화된 분위기를 전한다. 관련 특위에서는 통신사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을 공시하는 방향도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의 미숙함이 '잘못'이 되지 않도록 관련 정부 부처·업계가 서로를 다독여 균형 있게 노 저어야 할 때다.

seung@fnnews.com 이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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