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휘발유 리터(ℓ)당 2200원'. 고급 휘발유 가격이 아니다. 국회의사당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 주유소의 보통 휘발유 가격이다. 여의도의 높은 임대료와 도로점용료를 감안해도 비싸다. 10일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약 1677원이다. 서울로 범위를 좁혀도 1750원대에 그친다. 왜 이렇게 비쌀까. 사건기자 시절 '고유가에 휘청이는 서민'은 기사의 단골 주제였다. 점심 자리에서 휘발유 가격 이야기를 꺼내니, 한 당직자는 "의원님들이 휘발유 가격을 신경이나 쓰겠어요"하고 냉소 섞인 반응을 내놨다.
한마디로 '내 돈을 안내니까' 비싸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결정된다. 리터당 2200원을 내고 관용 차량에 휘발유를 넣는 이들은 가격에 신경 쓰지 않는다. 국회 앞 비싼 주유소를 찾는 주요 고객은 국회의원들이다.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보면 씁쓸하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매년 국회의원들이 받아 가는 세비는 올해 기준 1억5690만원이다.
국회 앞 2000원이 넘는 휘발유 가격은 우리 정치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들은 본인이 타는 차에 기름값이 얼마인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말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본인들이 쓰는 돈은 '내 돈이 아니라' 무감각하다. 진짜 국민의 눈치를 봤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리터당 50원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 돌아다니는 서민들을 생각한다면, 전국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주유소가 국회 앞에 위치할 일은 없었다.
이런 우리 정치의 몰골에 국민은 외면하고 있다. 기자가 지역구에서 만난 사람들은 싸움만 일삼는 거대 양당밖에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입을 모았다. 뽑을 인물이 없으니 정치 혐오와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우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에 공감하지 못하니 관심도 없고 구역질만 난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 틈을 타 본인들을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세력 형성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정치가 변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취재하며 제일 반가웠던 공약은 한동훈 위원장이 들고 나온 '정치 개혁'이다. 각종 특권을 포기하고 세비도 반으로 줄인다는 것이 골자다. 정치 개혁을 들고 나온 정치인이 한 위원장이 처음은 아니지만, 정치 개혁을 실천하는 첫 번째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다. 국민의 눈치를 보고 두려워하며 '반응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호소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고개를 돌린 국민들도 곁눈질로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마시라.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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