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해와 작황 불안이 반복되며 날씨에 민감한 과일·채소류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설 연휴 직후 터진 '도시가스요금 대란'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유난히 추운 날씨로 사용량이 늘며 국민이 체감하는 도시가스요금은 전례 없이 뛰었고, 전기·LPG·등유 요금 등 난방비와 에너지 가격 전체로 옮겨갔다. 기후위기가 또 다른 모습으로 국민의 삶을 위협한 것이다.
만일 가스공사가 없었다면 국제 가스가격 인상폭이 그대로 요금에 반영돼 국민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다. 산업용 요금은 원료비 연동제 시행으로 국제 가스가격이 반영됐지만, 가정·자영업자 등 민수용 요금은 연동이 유보돼 장기간 원가 이하로 공급됐기 때문이다. 외국처럼 천연가스 수입을 모두 민간이 담당했다면 이런 혜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천연가스를 수입할 때 낸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요금 인상으로 가스공사가 대신 떠안은 빚을 갚아야 하는데, '미수금'이라 불리는 이 빚을 누가, 언제, 어떻게 갚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지난해 말 기준 가스공사 미수금은 13조원에 달한다. 2012년에도 국제유가 상승으로 미수금이 생겼지만 당시는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추세였다. 무엇보다 미수금 액수가 5조5000억원이어서 현재와 규모 차이가 컸음에도 이를 해소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천문학적인 미수금은 가스공사의 여력을 갉아먹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국제유가는 여전히 높고 언제 또 겨울 혹한이 반복될지 모른다. 평상시 미수금 해결방안을 제대로 준비해 놓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더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결법이 없는 건 아니다. 다행인 것은 가정용 도시가스는 계절별 사용량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사용량이 적은 여름철에 일시적인 요금 인상으로 미수금을 충당하는 방안, 저소득층·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방안 등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당장 미수금 해소가 어렵다면 단계적인 로드맵이라도 만들어 재정 불안 요인을 없애고,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에 대비한 여력을 비축해야 한다. 천연가스도 석탄·석유처럼 점차 사용량을 줄여야 하는 화석연료이기에 단열 강화, 효율 향상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위기는 언제든 온다. 미수금으로 가스공사의 재무구조가 악화됐을 때 2022년 같은 에너지 위기가 터지면 국내 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복합 위기가 일상화된 지금, 눈앞의 고비를 넘겼다고 안심했다가 더 큰 재난이 닥친다면 해결할 방안은 요원해지고 말 것이다.
이헌석 출판 연구공동체 신헌재 기획위원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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