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때 남동생과 놀다가 실종
서울·수도권 보육원 수십곳 방문
실종 방송에도 제보전화 한통없어
서울·수도권 보육원 수십곳 방문
실종 방송에도 제보전화 한통없어
어머니는 그 날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영숙씨가 실종됐던 그날 같은 건물에 살던 이웃이 집에 찾아왔다. 그러곤 영숙씨를 목욕시켜 주겠다고 데리고 나갔다. 어머니는 "당시 막내딸이 태어난 지 100일이 안 된 시점이라 집에서 꼼짝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웃이 찾아와 목욕탕에 데려간다고 하니 그러라고 답했다"며 "너무 힘들었던 시기라 집에 시계도 없어서 그때가 몇시였는 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목욕탕을 갔던 이웃과 영숙씨는 몇 시간이 지난 후 돌아왔다. 별일은 없었다. 이내 영숙씨는 남동생과 집 앞에 놀다가 오겠다면서 다시 집을 나섰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 함께 나갔던 남동생은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나갔던 영숙씨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영숙씨의 행방을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바람처럼 딸이 사라졌다는 것이 어머니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그날 온 동네를 돌면서 동네 사람을 붙잡고 딸의 행방을 찾았지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신풍시장 내 한 가게 안에서 아빠와 함께 있는 영숙이를 봤다는 것 정도가 유일한 제보였다"고 했다.
한걸음에 서울 영등포구 신풍시장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해당 가게를 찾아 주인에게 물었지만 주인은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신풍시장에서 영숙씨를 찾지 못한 어머니가 향한 곳은 경찰과 방송국이었다. 경찰이 여자아이 실종에 관한 작은 이야기라도 해주면 해당 지역으로 쫓아갔다. 거기서 또 작은 이야기라도 들으면 다시 쫓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서울뿐만 아니라 안양 등 수도권 일대 보육원 수십군데를 돌았다고 한다. 아울러 방송국도 찾아가 실종 방송도 냈다.
어머니는 "어린 둘째 아들과 막내딸을 집에 둘 수 없어 모두 함께 다녔다. 물도 못 먹고 다니다 보니 이러다 애들이 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그렇게 찾아다녔지만 영숙이를 찾지 못했다. 방송도 했지만 제보 전화 한통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며 5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난해 여름, 경찰에서 전화 한통이 왔다. 영숙씨와 비슷한 사람이 있으니 유전자를 대조해 보고 싶다며 의사를 물었다. 당연히 어머니는 유전자 대조에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불일치'였다.
어머니는 "영숙이 실종에도 한번 나서서 찾지 않았던 남편도 지난 2월에 죽었다. 저도 이제 70대 중반인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너무 다시 만나고 싶지만 이제는 영숙이를 못 만나겠다는 생각도 든다. 몸부림친다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영숙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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