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에 자원입대해 '횡성-포동리 부근 전투'서 전사
[파이낸셜뉴스]
이날 국유단에 따르면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3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내와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참전했던 고 차 일병이 74년 만에 가족 품에 돌아왔다. 이로써 군 당국이 2000년 4월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한 이래 신원을 확인한 6·25전사자는 총 229명이 됐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됐단 소식에 아들 차성일 씨는 "생애 동안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저 서울현충원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울분을 달래왔다"며 "아버지를 찾아준 소식을 듣고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난다"고 감회를 밝혔다.
국유단은 "전쟁 당시 적군과 교전으로 사망한 군인 여러 명이 매장됐다"는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2004년 9월 전문 발굴병력을 투입해 고인의 유해를 발견했다.
국유단은 2010년 9월 고인의 아들 차씨를 찾아 유전자 검사를 했으나 이때는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고, 이후 더 정확한 최신 기술로 다시 분석한 결과 올해 3월 부자 관계임을 최종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1917년 3월 울산 중구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차 일병은 정유회사에 근무하며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그는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던 중 인천상륙작전 다음 날인 1950년 9월 16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했다.
차 일병은 국군 제5사단 소속으로 '영남지구 공비토벌'에 참전했고, '가평, 청평, 춘천지구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맞서 '횡성-포동리 부근 전투'에 참전 중 1951년 2월 8일 3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차 일병은 1970년 훈련 중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내 소대원을 구하고 순직한 육군3사관학교 1기 고(故) 차성도 중위의 삼촌이기도 하다.
국유단은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6·25전사자 유가족(전사자의 친·외가 포함 8촌까지)은 국유단에 전사자 유해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전자 시료 채취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가 제공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 유해 신원이 확인됐을 땐 포상금 1000만원을 지급한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