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아나:바다]는 드넓은 '프리의 대양'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아나운서들의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안정된 방송국의 품을 벗어나 '아나운서'에서 '방송인'으로 과감하게 변신한 이들은 요즘 어떤 즐거움과 고민 속에 살고 있을까요? [아나:바다]를 통해 이들을 직접 만나,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려 합니다.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서현진 전 MBC 아나운서와의 인터뷰 내내 '갓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요즘 말로 '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의미한다는 갓생은 서현진이 살아온 과정 그 자체였다. 서현진은 10년의 시간을 보냈던 MBC 시절에 대해 "몸을 불살랐다"는 표현으로, 방송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힘썼던, 당시의 치열했던 숨은 노력을 짐작하게 했다.
서현진은 지난 2004년 MBC 32기 아나운서로 입사한 후 MBC 대표 아나테이너로 활약해 오다 2014년 퇴사했다. 2001년 제45회 미스코리아 선이라는 화려한 출신과 서울예고·이대 무용과를 거친 이력, 눈에 띄는 남다른 미모 등으로 금세 MBC 간판으로 자리매김했으나, 그 뒤에는 "물밑에서는 내 존재 가치를 찾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는 비화가 있었다.
서현진은 MBC의 다수 예능과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활약하면서도, 저널리스트로서의 깊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직 중 유학을 결심하는가 하면, 이를 위해 쪽잠 자며 영어를 공부해 UC버클리로 유학을 떠났고 석사 과정을 밟았다. 또 30대 여성으로서 고민과 성장통을 담은 책을 발간하는가 하면, 끊임없이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발전을 거듭하는 시간을 지나왔다.
퇴사 이후에는 결혼생활과 육아에 집중하면서도, 요가 커리어를 시작해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근황을 전했다. "열심히 사는 이 DNA는 어디 안 간다"며 웃던 그는 요즘 책과 요가를 접목한 그만의 클래스를 선보이고 있다. 화가 많았던 자신을 다스리고, 우아하고 유한 장년을 꿈꾸며 만난 요가는 어느새 서현진만의 특별한 콘텐츠가 돼 있었다.
서현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20, 30대보다 현재 40대와 앞으로의 50대, 더 좋은 어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기도 했다. "방송 커리어로 엄청나게 발전을 이뤘다는 말을 하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가 딱히 빛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린 다 잘해 나가고 있어' '나 자신을 다독여주자'고 하고 싶다"는 고백으로 현재의 여유를 엿보게도 했다.
서현진을 [아나:바다]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만났다.
-최근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에도 깜짝 출연했다. 극 중 아나운서로 등장했는데, 익숙한 옷을 오랜만에 입은 소감은.
▶이렇게 잘 나가는 드라마에 로봇 연기로 재를 뿌려도 되나 했다.(웃음) 그래도 카메오이고 아나운서 역할이니까 하기로 하고 현장에 갔는데 좋아하는 두 배우가 계시더라. 저도 신기했다.(웃음) 요즘 육아를 하면서 요가복만 입고 살다가 오랜만에 옛 회사인 MBC의 잘 나가는 드라마에서 아침 프로그램 진행자 역할을 하니 '다시 이제 방송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들기도 했다. 재밌었던 촬영이었다.
-잠깐이지만 연기를 경험해 보니 어땠나.
▶본격적으로 연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연기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를 느꼈다. 드라마는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는데 그럼에도 배우들은 감정을 다 유지를 하면서 연기를 하시는 게 놀라웠다. 어느 분야이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분들은 하나 같이 다 공통적으로 존경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연기자든, 나와 같은 분야의 방송인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MBC 아나운서 시절에도 만능 아나테이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MBC 입사 전에는 무용으로 서울예고, 이화여대를 거쳤고 미스코리아 출신이기도 하다.
▶저는 어릴 적부터 인정 욕구에 목마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웃음) 무대 위에서 '나 여기 있어요'라고 알리고 싶고, 봐주면 뿌듯해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찾았던 것 같더라. 언니들만큼 공부를 잘할 수 없으니 좋아하는 다른 것을 찾아보자 해서 무용을 시작하게 됐고, 예고와 여대를 가고 미스코리아에 도전하고 아나운서를 해온 과정이 나를 드러내고자 했던, 인정받고자 했던 진로였던 것 같다.
-32기 동기가 김정근, 나경은 아나운서다. 동기들이 워낙 쟁쟁했기에 입사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 (특이 사항으로) 미스코리아 출신이란 점이 있었는데, 남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튀어 보이겠다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더 기본에 집중해서 진지한 면을 부각하려 했다. 사람이 부족한 부분에 매몰되다 보면 내게 없는 장점을 채워야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장점에 집중해야 했다.
-당시 선배 김성주 등의 활약 이후 MBC 아나테이너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던 시기였다. 기억에 남은 활동이 있다면.
▶당시 다양한 프로그램을 했지만 제일 좋아했던 건 라디오 DJ였다. '굿모닝FM 서현진입니다'를 진행했었다.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는 전형적인 라디오 DJ 톤이 있어서 정제된 말을 사용하고 정적으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제게는 조금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건 저보다 훨씬 목소리 좋은 선후배들이 잘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때도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 '나는 되게 솔직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라디오 할 때도 솔직하게 멘트를 했다.(웃음) 청취자가 '힘들어요'라고 사연을 보내면 '힘내시고요, 저도 잘 되실 거라 기도합니다'라는 멘트는 사실 와닿진 않는다. 그래서 진짜 그냥 생각하는 대로 리액션을 했더니 청취자분들이 진짜 많이 좋아해주셨다. 장수 DJ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DJ도 아니었지만 저를 기억해 주시는 분들 중에서는 당시 라디오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 '되게 솔직하게 진짜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제 청춘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아침을 같이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십수 년이 지나도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때 너무 감사하더라.
-여성 아나운서들 중 여전히 다재다능한 아나테이너로 기억되고 있는데,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그런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주말 '뉴스데스크'를 했었는데 1년 만에 하차를 한 적이 있다. 보통은 커리어 하이, 정점을 찍었다고 하는데 아나운서가 된 지 2년 차에 맡아서 3년 차에 하차하게 되면서 정말 1년밖에 못 했었다. 그때는 20대니까 그런 부분들을 견디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밥값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예능 쪽으로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절대 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고민하던 차에 예능 패널로 나가게 됐다. 그게 정말 큰 기회여서 막 몸을 불살랐다. 그게 20대니까 가능했던 거다.(웃음) 그랬더니 반응이 오더라. 당시 타사도 그렇고 아나테이너 붐이 같이 불어서 더 활발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당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는데, 숨은 노력의 과정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그 물밑에서는 내 존재 가치를 찾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웃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나를 보여주지 않으면 스스로가 불안한 거다. 내가 있을 곳이 없는 것 같고 내 잘못인 것 같고 그런 것으로 괴로워하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한데 안간힘을 쓰면서 인정받기 위해 10대와 20대, 30대를 노력하면서 살았던 게 안쓰럽기도 했다. 그 덕에 남들이 갖지 못한 기회도 얻고 좋은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남들이 보면 너무 독하고 피곤하고 힘들게 볼 것 같더라.
<【아나:바다】 서현진 편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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