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기관 습격 참여, 총독 저격 실패했으나 항일 의식 고무
[파이낸셜뉴스]
충청북도 충주 출생(연도미상)인 채찬 선생은 의병투쟁을 하다 만주로 이동해 신흥무관학교를 수료했다. 이후 서로군정서, 통의부 등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독립신문에 자금을 지원했다.
1899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난 김창균 선생은 의병장들이 주도해 결성한 대한독립단에 가입해 일제와 교전을 벌이고 밀정 처단에 앞장섰다. 그는 1922년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해 결성한 통의부에 참여해 일제 경찰대와 교전하고 일제 기관을 습격하는 등 큰 피해를 입혔다.
1884년 평안북도 용천 출생인 장창헌 선생과 1896년 평안남도 대동 출생인 이춘화 선생은 일찍부터 대한통의부 의용군에 참여해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1924년 친일파를 사살하고 가옥을 소각하는 등 무장투쟁을 벌이다 일제와 교전 중 순국했다.
1924년 5월 19일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압록강 상류에서 신의주를 향해 국경을 시찰한다는 정보를 들은 채찬 선생은 총독 사살을 명령했다. 이에 다른 세 선생은 매복을 하고 있다가 일제히 사격했다.
이들의 사격에 일제 경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도주했다. 저격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으나, 사이토 총독은 그 해 열린 일본 국회에서 조선 통치 성과 보고를 하지 못하고 저격 사건의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사실은 독립신문 등 다수의 언론에 해당 사건이 대서특필돼 한민족의 항일의식을 고무시키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1962년 채찬 선생에게 독립장을 1995년 김창균 선생에게 독립장과 장창헌·이춘화 선생에게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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