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르포]"미세한 마약류 냄새도 한 번에" 마약탐지견 훈련센터[마약중독과 싸우는 사람들<15>]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15 13:30

수정 2024.05.15 16:15

관세청 산하 관세인재개발원 탐지견훈련센터
지난달 29일 방문한 관세청 산하 관세인재개발원 마약탐지견훈련센터에서 탐지견 로리가 마약탐지 훈련을 하고 있다./사진=박범준 기자
지난달 29일 방문한 관세청 산하 관세인재개발원 마약탐지견훈련센터에서 탐지견 로리가 마약탐지 훈련을 하고 있다./사진=박범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난달 29일.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일렬로 늘어선 수하물을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수하물 주변에는 사람 모습을 한 마네킨들이 배치돼 있다. 리트리버는 갈색 수하물 앞에서 한참 코를 킁킁 거리더니 자세를 잡고 앉았다. 다른 곳으로 가자고 목줄을 아무리 담겨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개는 생후 11개월 된 마약탐지 훈련견 '로리'다.
로리가 찾아낸 캐리어를 열어보니 밀봉된 필로폰 100g이 숨겨져 있었다. 훈련사가 흰색 수건 뭉치를 떨어뜨리며 "휘~~~호~~~" 하는 환호성을 낸다. 수건 뭉치와 훈련사의 외침은 마약을 찾아낸 로리에게 주는 즐거운 보상이다.

놀이로 인식해 후각 예민하게 키워
기자는 인천광역시 중구 관세인재개발원에 있는 마약탐지견 훈련센터를 찾았다. 훈련센터 내부는 공항 수하물 회수구역과 비슷하게 꾸며져 있다. 컨베이어벨트 모양으로 그려진 바닥엔 여러가지 색깔과 재질로 된 여행용 가방들을 배치했다. 훈련할 때 이곳 어딘가에 실제 마약이 들어 있다. 주변에 늘어선 마네킨들은 수하물을 찾는 사람들을 연출했다. 이 마네킨의 허리와 바지춤 등에도 교관들이 마약을 숨겨 놓는다.

박종수 관세청 탐지견훈련센터 교관과 훈련견 로리. 사진=박범준 기자
박종수 관세청 탐지견훈련센터 교관과 훈련견 로리. 사진=박범준 기자
이날 훈련센터에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견종의 훈련견 7마리가 차례로 마약 찾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공항 입국장에서 여객 수화물(케리어)와 여객 당사자의 냄새를 맡아 숨겨진 마약류를 찾는 훈련이다. 마약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위치한 갈색 케이러에 필로폰 100g이, 컨베이어 벨트 오른쪽에 위치한 마네킹의 바지 주머니에 코카인 62.6g이 숨겨져 있었다. 이들 7마리 모두 정확하게 마약류가 숨겨진 곳을 찾았다.

실제 이날 만난 탐기견들은 숨겨진 마약류를 찾을 때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연신 냄새를 맡았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 즐겁다는 몸짓이었다. 훈련교관들은 훈련견들이 마약류를 탐지하면, 수건 여러 겹을 원기둥 모양으로 말아놓은 물건인 '더미'를 내어주며 짧게는 1분, 길게는 2분 동안 훈련견들과 놀아준다.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견이 '손'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에게 앞발을 건네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간식을 얻어먹듯 탐지견에겐 더미 놀이가 보상인 셈이다.

더미는 훈련견 교육에서 단순히 놀이 도구로써 사용될 뿐만 아니라 마약류와 친숙해지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훈련견이 처음 훈련을 받을 때 대마 코카인 헤로인 엑스터시(MDMA) 아편 헤시시 총 마약류 6종과 친숙해지는 훈련(마약냄새 기억훈련)을 하는데, 이때 더미를 사용하는 것. 마약류가 희석된 액체에 더미를 담가 마약류가 잘 스며들게 한 다음 더미를 가지고 놀게 해 마약류의 '은은한' 냄새가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박 훈련교관은 "탐지할 때 마약류는 밀봉된 상태에 있으므로 그것의 냄새가 100%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발현되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미세한 냄새도 맡을 수 있고, 마약류 냄새와 친숙함을 느낄 수 있도록 훈련과정에서 더미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훈련을 총괄 지휘한 박종수 훈련교관(50)은 훈련견들에게 숨겨진 마약류를 찾는 훈련이 일종의 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훈련견은 탐지 활동이 자기 주도적으로 나서는 놀이의 일종이라 생각한다"이라며 "마약을 찾을 때마다 즐거움을 줘 인간보다 좋은 후각이 더 예민하게 반응토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생후 약 1년 6개월간 맹훈련
여러 견종중에 리트리버가 마약을 탐지하는데 적합하다고 한다. 사람 몸에 지닌 밀수 마약을 탐지하려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게 탐지견의 필수 덕목이다. 친화력이 좋은 리트리버가 마약탐지견으로 쓰이는 이유다.

탐지견 훈련 대상이 된 리트리버는 생후 약 4개월까지 '자견(子犬)훈련'을 한다. 체력과 소유욕, 집중력을 기른다. 이후 8개월이 지나면 양성 훈련을 한다. 복종, 마약 냄새 기억, 수화물 탐지 등을 배운다. 이 과정을 모두 마친 성견(成犬)은 탐지견으로서 16주간 집중 교육을 받는다. 이 기간 동안 친화 및 복종훈련, 마약냄새 기억훈련, 여행자 수화물 탐지훈련, 여행자 신변 및 휴대품 탐지 훈련, 수출입 화물 및 우편 탐지 훈련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이렇게 16주의 훈련이 끝나면 마약탐지견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을 치루는데, 훈련견 중 40~50%만이 이 시험에 통과한다고 한다. 탐지견에서 탈락한 개는 사회화 교육을 거친 뒤 일반 가정에 입양된다.

더미를 이용해 자견훈련을 하고 있는 자견들. 사진=박범준 기자
더미를 이용해 자견훈련을 하고 있는 자견들. 사진=박범준 기자
"신종마약류에도 빠르게 대응할 것"
마약탐지견은 '마약과 전쟁' 최전선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용사'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관세청이 적발한 밀수 마약류의 건수는 704건인데, 이중 마약탐지견이 적발한 밀수 마약류 건수가 전체의 11.9%에 해당하는 84건이다.

한국의 마약탐지견의 역사는 1987년 12월에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미국 관세청에서 폭발물탐지견 6마리를 무상 기증받아 김포국제공항에 처음 투입했다. 1995년 2월 김포국제공항에 마약견센터를 준공하고 2001년 9월에는 인천 영종도에 훈련센터를 세웠다. 2021년에는 훈련센터가 세계관세기구(WCO)의 지정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탐지견 훈련기구’(RDTC)로 지정돼 마약류 탐지 역량을 발전시키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해 4월 세계 78개국 관세 당국 대표가 모인 'KCW 2023'을 서울에서 개최했다. 이 자리에선 훈련센터가 길러낸 탐지견 2마리를 태국에 기증했다. 이들 탐지견은 영종도 훈련센터에서 태국 측 탐지조사요원 2명과 팀을 이뤄 양성훈련을 받고 있다.
오는 7월부터는 태국에서 활동한다.

아울러 늘어나는 신종 마약류에 대한 현장의 탐지수요에 부응하고자 훈련센터는 훈련견들을 대상으로 케타민 등 신종 마약류를 대상으로 한 훈련도 진행할 예정이다.
박 훈련교관은 "최근 케타민 등 신종 마약류에 대한 위험도가 높아지다 보니 훈련 대상을 신종마약류까지 넓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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