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 허니번치 카일 브라운
수요일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는 할머니와 데이트를 했다
멀리까지 함께 운전연습을 하고
때로는 사소한 식사예절부터 이성에게 잘보이는 법도 배웠다
어느날부터 할머니는 길을 잃고 게임에서 나를 이기지도 못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셨던 것…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던 존재가
곁을 떠난지 12년이 지났지만
함께한 시간 배운 작은 것들이
내 인생의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
수요일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는 할머니와 데이트를 했다
멀리까지 함께 운전연습을 하고
때로는 사소한 식사예절부터 이성에게 잘보이는 법도 배웠다
어느날부터 할머니는 길을 잃고 게임에서 나를 이기지도 못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셨던 것…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던 존재가
곁을 떠난지 12년이 지났지만
함께한 시간 배운 작은 것들이
내 인생의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
열여섯 살이던 해, 매주 수요일 나는 하교 후 멋진 버튼다운 셔츠와 가장 좋은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우리 집과 펜실베이니아주 미드빌 외곽에 사는 할머니 집 사이에 놓인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갔다. 정확히 4시에 허니번치 할머니(모두들 그렇게 불렀다. 왜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할머니의 다정한 성품에 딱 어울린다는 것만 빼고)는 짙은 초록색 닷지 스트라투스 세단을 흙바닥인 진입로에 세워 두었다.
"안녕, 카일!"
할머니는 큰 소리로 외치며 의자공장에서 하루 종일 서 있느라 지친 기색을 숨겼다.
"우리 데이트하는 날이지! 준비할게. 잠깐만."
거실에서 기다리며 할머니가 나를 이기려고 열심히 연습했던 닌텐도 오락기를 만지작거렸다. 할머니는 뽐낼 권리를 굉장히 즐겼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방금 빗은 짧고 흰 곱슬머리에, 특별한 날에만 뿌리는 자욱한 향수 향을 풍기며 나왔다.
"내 지갑이 어디 있지?" 하고 평소처럼 정신없어하며 물으면, 내가 테이블 아래나 소파 쿠션 사이에서 지갑을 찾아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출발했다. 내가 닷지를 몰았는데, 그러면 내 면허에 필요한 성인 감독 운전 100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우리가 했던 가장 큰 모험은 할머니를 태우고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가족 모임에 운전해서 간 일이었다. 창문이 열려 바람이 머리를 날리는 와중에 할머니는 길 찾기에 매진했는데, 아주 잘 찾지는 못했다. 거의 매주 수요일이면 우리는 미드빌의 타코벨이나 KFC에 갔고, 나는 제한속도를 잘 따르며 운전했다. 가끔 우리는 유니언시티에 있는 크래커 배럴에서 흥껏 식사를 했다.
당시 이제 막 숙녀들에게 구애를 시작하던 때인 어느 날 저녁 나는 내 주변에서 가장 숙녀다운 할머니에게 신사가 되는 법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 세대는 어쨌든, 우리보다 훨씬 더 로맨틱하고 예의 발랐다. 나는 서둘러 차 문을 열어 주고, 할머니를 식당으로 안내한 다음, 다시 식당 문도 잡아 주었다.
"완벽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의 의자를 빼 준 다음에야 자리에 앉았다.
"무릎에 냅킨." 할머니가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네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상대방이 어떤 음식을 시킬지 기다리렴. 그래야 음식값을 낼 충분한 돈이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정확히 따랐다. 종업원이 우리를 향해 활짝 웃었다.
"이제 올바른 식기류 예절 차례야."
할머니가 말했다.
"샐러드 포크로 시작하렴."
식사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나의 여자 친구들에 대해 놀렸다.
"교회에 있는 수잔한테 관심이 있구나."
얼굴이 빨개졌다.
"저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부 인사를 꼭 물으렴."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많이 웃어. 네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지."
나는 계산을 하면서 할머니가 알려 준 대로 팁을 남기고, 차를 타고 나의 청년 모임과 할머니가 성경 공부를 하는 교회로 갔다. 안에 들어가기 전, 할머니는 큰 검정색 핸드백에 손을 넣었다. 할머니는 리글리 스피어민트 한 통을 꺼내더니 내게 껌 하나를 주었다. 우리의 의식이었다.
오래는 아니지만, 할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나는 결국 같은 교회 수잔과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면허증을 따고 내 차를 산 후에도 할머니와 나는 우리만의 수요일 밤 데이트를 이어갔지만, 졸업 후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바빠지면서, 수요일에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한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때쯤에는 자주 닌텐도 게임에서 지게 되었다.
내가 스물둘이고 할머니가 예순일곱이던 추수감사절에 할머니는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모 집에서 출발했다. 몇 시간 후, 경찰이 전화했다. 그들이 수백 마일 떨어진 오하이오 어딘가에서 할머니의 차를 세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전혀 몰랐다.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할머니가 평소에도 정신없었던 터라 우리는 알츠하이머 초기 증세를 놓쳤다. 우리는 할머니를 더 이상 운전하게 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그 차를 가졌다. 하지만 하나가 아닌 여러 면에서 나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던 할머니가 곁에 없이 닷지를 운전하는 것은 전과 같지 않았다.
이듬해, 할머니는 끼니 챙기는 것을 잊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알츠하이머 요양원에 모셔야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할머니를 방문하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우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부터 완전히 반응이 없는 과정까지 변해 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12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직 내 짝은 찾지 못했지만, 찾게 되면, 할머니가 스피어민트 껌을 건네줄 때의 마음으로 내 곁에 있을 것임을 안다. 때때로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작은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 원문으로 읽는 오늘의 이야기 Grandma Honeybunch
Every Wednesday when I was 16, I'd change into a nice button-down and my best jeans after school. Then I'd ride my bike on the path between our house and my grandmother's outside Meadville, Pennsylvania. Exactly at four, Grandma Honeybunch(we always called her that, though I don't know why except that it fit her sweetness)would pull her dark green Dodge Stratus sedan into the dirt driveway.
"Hi, Kyle!"
she would call out, trying to hide how worn out she was from a long day on her feet at the chair factory.
"It's our date night! Give me a few minutes to get ready."
I waited in her living room, fiddling with the Nintendo console I knew she practiced on so she could beat me. Grandma Honeybunch loved her bragging rights! Out she'd come in a flowered print dress, her short, curly gray hair freshly brushed, wafting in a cloud of the perfume she wore just for the occasion.
"Where's my purse?" she'd ask, absentminded as usual, and I'd retrieve it from under the table or between the couch cushions.
Then we were off, with me behind the wheel of the Dodge so I could log 100 adult-supervised hours for my license. Our biggest adventure had been when I drove us to St. Louis for a family reunion, windows down, the wind blowing through our hair, as Grandma Honeybunch tried to navigate, something she wasn't too good at. Most Wednesdays we headed to Taco Bell or KFC in Meadville, me tootling along well under the speed limit. Sometimes we'd splurge and dine at Cracker Barrel in Union City.
I'd just started trying to woo the ladies, so one night I asked Grandma Honeybunch, the most ladylike of them all, to teach me to be a gentleman. Her generation was, after all, much more romantic and polite than my own. I hurried to open her car door, then escorted her to the restaurant, where I again held open the door.
"Perfect," she said. I pulled out her chair, then took my seat.
"Napkin in the lap," she reminded me.
"Then wait to hear what the lady is having before you order. That way you'll know you have enough money for the bill." I followed her instructions to a T. The waitress beamed at us.
"Now on to the proper silverware etiquette," Grandma Honeybunch said, "starting with the salad fork." Over our meal, she teased me about girls.
"I see you have your eye on Susan at church."
I blushed. "What should I do to make her like me?"
"Be sure to ask her how she's doing," Grandma Honeybunch said.
"And smile a lot. Let her see you're a happy person."
I paid the bill, leaving the tip Grandma Honeybunch instructed, and drove us to church, where I'd go to youth group and she to Bible study. Before we went in, she dug into her big black purse. She pulled out a pack of Wrigley's Spearmint gum and offered me a stick, our ritual.
I did end up dating Susan from church, with Grandma Honeybunch's full approval, though it didn't last. Even after I got my license and my own car, my grandmother and I continued our Wednesday date nights, but once I graduated and got busy with college and a part-time job, I didn't have Wednesdays free. I still spent as much time with her as I could, regularly losing at Nintendo by then.
The Thanksgiving I was 22 and she was 67, Grandma Honeybunch left my aunt's house after dinner to go home. Hours later, the police called. They'd pulled her over hundreds of miles away, in Ohio. She had no idea how she'd gotten there. It was a shock for all of us; she had always been so absentminded that we'd missed the early signs of her Alz-heimer's. We knew we couldn't let her drive anymore; I took her car. Driving the Dodge was never the same, though, without my grandmother by my side, steering me right in more ways than one.
By the next year, Grandma Honeybunch was forgetting to eat. Our family made the difficult decision to put her into a memory care unit at a nursing home. It broke my heart to visit her there, as she went from knowing who we were to becoming totally unresponsive. She passed away 12 years ago.
I haven't found the right woman yet, but when I do, I know Grandma Honeybunch will be with me in spirit to offer a stick of Wrigley's. Sometimes the smallest things we remember make the biggest difference in life.
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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