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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균의 에브리싱] 연금개혁 난장판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08 18:23

수정 2024.05.08 18:23

정책 결정권자들 무책임
빈곤·재정고갈 공포 조장
‘직 걸겠다’ 각오로 임해야
논설위원
논설위원
연금개혁이 난장판이 됐다. 정부와 정치권, 국가 의사결정권자가 우왕좌왕하고 이념이 다른 전문가들이 서로 으르렁대다 이 꼴이 됐다. 과거에도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에 원성이 높자 욕먹기 싫은 정부는 눈을 감았다. 문재인 정부 5년이 그랬다. 윤석열 정부도 2년을 이렇게 허비한 것이다.
연금개혁은 두 노선이 물과 기름같이 갈린다. 안정적인 노후소득이 우선이라는 소득보장파, 지속가능한 재정을 유지하자는 재정안정파다. 각 파마다 대표 논객이 있고, 그들이 공동대표로 참여한 게 국회 연금개혁특위다.

지난달 특위가 진행한 시민공론에서 재정안정파(2안, 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가 역전패한 것이다. 보험료율(현행 9%)은 내는 돈, 소득대체율(40%)은 노후에 받는 돈이다. 시민대표 492명의 56%가 선택한 소득보장안(1안,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대로면 연금은 2061년 바닥 난다. 사회에 갓 진출한 1996년생이 연금을 받는 그때다. 앞으로 4년 후인 2028년생 아이가 늙어 연금을 받는 2092년 기금 적자가 700조원 이상 늘어난다는 추계다. 약속한 연금을 주려면 이들 미래세대가 소득의 최대 40% 가까이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시민대표단 자료집을 살펴봤다. '더 내고 덜 받는' 선택을 나는 흔쾌히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뇌는 수십년 후 미래를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일로 인식한다고 한다. 사회적·이성적 판단을 하는 내측 전두엽이 미래의 일에 타인을 인식할 때와 같은 작동을 한다는 것이다. 연금재정이 고갈되는 40여년 후는 나와 무관한 타인의 일처럼 먼 미래인 것이다. 학습을 더 했으면 공론화 결과는 어땠을까. 표결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본다. 학습과 인지를 거듭할수록 미래를 자신의 일로 인식, '합리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사태는 더 꼬였다. 소득대체율 2~3%p를 놓고 21대 국회 회기 막판에 정치인들이 입씨름을 하다 손을 놨다. 정치적 타협이 더 위험했을지 모른다. 결렬된 게 차라리 잘된 셈이니, 웃지 못할 희극이다. 이런 사달은 예상할 수 있었다. 지난해 7~8월 정부가 20~59세 연금가입자 2025명에게 개혁 방향을 물었는데 '연금액이 적다'는 응답이 50대가 35%로 연령대 중에 가장 높았다. 연금 수령이 더 가까운 세대, 즉 50대의 46.5%가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을 선호한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낸 것보다 더 받는' 구조다. 소득 중 일정액을 기꺼이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연금을 낼 국민이 있어야 은퇴세대들이 연금을 더 받는다. 20년 후인 2044년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700만명으로 줄어든다. 연금을 내는 세대다. 반면 이들이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고령자는 2050년 1900만명에 이른다. 건국 이래 인구가 가장 많은(1960년대 후반~1980년대생), 경제성장 최대 수혜 세대가 10~20년 후 피부양자가 되기 때문이다.

난장판이 된 것은 정책결정권자의 무책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는 24가지 개혁 시나리오 '꼼수'로 혼란을 부추겼다. 대통령도, 여야도 총선을 앞두고 입을 닫았다. 전문가랍시고 재정고갈이든 노후빈곤이든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연금개혁의 답을 알고 있다.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현세대가 다가올 미래를 자신의 일처럼 인지하도록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모수개혁)이 끝도 아니다. 매년 20조원 이상 재정이 투입되는 기초연금, 공무원·군인·사학연금과의 형평성 문제 등 풀기 어려운 구조개혁 과제들이 더 있다. 일용근로자, 특수형태근로자 등 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계층도 포용해야 한다.


개혁안 도출을 국회에 위임해 실패한 이상 지금부터는 국정책임자 대통령과 행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직(職)을 걸겠다는 확신을 갖고 추진하는 장관, 이를 지지하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대통령연금' 특권도 버리겠다는 각오로 고통을 분담하고 국민과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의료개혁에 인내하는 이유도 가야 할 방향이라 믿는 국민이 많기 때문 아닌가.

skju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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