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경쟁..당신의 '응꼬'는 안녕하십니까?: 2화
[파이낸셜뉴스]
2010년 2월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제21회 동계 올림픽, 필자는 당시 교환학생으로 캐나다의 한 시골에서 TV로 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었다. 올림픽 중계를 보며 한국과 다른 한 가지 사실에 놀랐다. 캐나다에서는 국가별 메달 순위를 금메달의 개수가 아닌 전체 메달 수로 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은메달 100개를 딴 나라보다 금메달 1개를 딴 나라의 종합 순위를 높게 여긴다. 하지만 캐나다는 매달 색과 관계없이 전체 금·은·동 메달의 숫자가 1개라도 많은 나라의 종합 순위가 높았다. 무의식 속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1등 우선주의'는 '땀의 가치는 동등하다'는 올림픽 정신과 충돌해 내 내면에 작은 혼란의 파도를 일으켰다.
어쩌면 전두환 군사정부가 우민화 정책으로 추진한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정책'과 '엘리트 체육인 양성' 또한 1등 주의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1980년 당시 개발도상국 수준이었던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많은 메달 숫자를 딸 가능성은 낮았으므로 기적 같은 금메달 1개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국가 순위를 높여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선동수단으로 썼을 것이다.
더불어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유일한 자원인 사람과 교육을 강조하는 국가 정책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교육, 성적, 1등에 대한 무의식 적인 강박을 쌓아 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캐나다에서 놀랐던 사실 또 한 가지는 이곳의 올림픽 체육 활동은 '엘리트 체육'이 아닌 '생활 체육'이었다는 것이다. 금메달을 놓치지 않는 캐나다의 컬링 여자 국가 대표팀의 소속 멤버는 치과의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일반인이었다. 이들은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 올림픽 시기에 맞춰 훈련을 하고는 금메달을 따왔다. 태릉선수촌에 합숙하며 지옥 훈련을 하는 우리나라 올림픽 대표와는 괴리가 컸다.
그렇지만 경쟁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쟁을 좋아하는 우리민족은 높은 교육열로 인해 세상 그 어느나라보다 빠르게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1953년 한국전쟁 이후 냄비하나 만들지 못하던 우리나라는 어느덧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다른 나라로부터 공적개발원조(ODA)를 받다 성장을 이룩한 뒤 다른 나라에 원조를 해주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더불어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특징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의 e-스포츠 강국이 됐으며, 치열한 경쟁이 필요한 오디션과 성실성을 기반으로 K-팝을 전세계에 유행시키기도 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한민족과 경쟁이 만나 '매운맛 챌린지'가 유행하고 한국의 매운맛이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 될 수 있을 듯 싶다.
1만 스코빌, 매운 '맛'과 '통증'의 경계
매운맛을 측정하는 스코빌 지수(SHU)는 캡사이신과 피페린 등 고추와 후추 등의 매운 맛을 측정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고안한 지표다. 캡사이신과 피페린 등의 농도를 측정하고 얼마나 많은 설탕물을 넣어야 맵지 않게 희석되는지 측정한다. 예를 들어 불닭볶음면 소스가 4000스코빌이라면 소스 양보다 4000배 많은 설탕물을 넣으면 매운맛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현재는 굳이 설탕물을 넣지 않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스코빌 지수를 측정한다.
매운맛은 엄밀히 말하면 미각 세포가 느끼는 화학적인 맛이 아니라 통증에 가깝다. 또 스코빌 지수를 통해 측정되는 매운맛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매운맛이 있다. 캡사이신과 달리 대파나 마늘, 양파 등에 포함된 매운 맛 성분인 알리신도 매운맛의 일종이다. 또 겨자, 와사비 등에 들어 있는 톡 쏘는 매운 맛 성분인 시니그린이 유발하는 매운맛도 있다. 최근에는 얼얼한 맛으로 표현되는 마라의 매운맛이 유행하고 있다. 다만 캡사이신을 제외한 다른 매운맛들은 스코빌 지수처럼 측정해 수치화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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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 등수 놀이, 라면이 제일 좋아
라면의 원조인 '삼양라면'의 스코빌 지수는 950SHU다. 진라면 매운맛은 2000SHU, 신라면은 3400SHU 정도다. 매운맛 유행을 선도한 불닭볶음면은 4404SHU이다. 다만 국물라면과 달리 볶음면은 소스를 다 먹기 때문에 수치상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체감상 더 매운 느낌이 든다. 열라면은 5013SHU, 신라면 더레드는 7500SHU, 장인라면 맵싸한 맛 8000SHU, 핵 불닭볶음면 1만SHU 등이다. 국내 컵라면 중 가장 매운 킹뚜껑은 1만2000SHU,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가장 매운 라면인 염라대왕라면은 2만1000SHU이다.
참고로 가장 매운 청양고추의 스코빌 지수는 1만2000SHU, 매운 맛으로 악명 높은 중국고추의 한 품종 하바네로고추는 10만SHU, 호신용 스프레이가 200만SHU이다.
사람이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매운 맛 과자인 미국 파퀴사의 '파퀴 칩'의 스코빌 지수는 220만SHU에 달했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목으로 넘기는 수준의 고통을 주는 것이다. 지난해 9월에는 이 과자를 먹는 챌린지를 했던 소년이 해당 칩을 먹고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 과자를 먹고 물이나 음료를 마시지 않고 5분간 버티는 '원 칩 챌린지'는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며 유행했는데 이를 따르던 한 소년이 결국 목숨까지 잃은 것이다. 사고 후 회사는 해당 과자 판매를 중지했다고 한다.
매운맛, 잠깐의 유행일까 장기 트렌드일까
개인적으로는 매운맛을 크게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떡볶이나 매운 라면 정도는 가끔 즐기지만, 최근 유행하는 마라의 매운맛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라탕과 마라가 들어간 몇몇 요리를 먹어 봤지만 영 나와는 맞지 않았다. 먼저, 고추를 사용한 한국식 매운맛과 달리 마라의 얼얼한 통각이 익숙하지 않아서다. 화끈하고 찌르는 한국식 매운 맛과 달리 마라의 매운 맛은 떫은 감을 먹었을 때 볼 안쪽에 남는 불쾌한 느낌이 든다. 두 번째로, 나이를 먹어서다. 어릴 적에는 매운맛을 통한 고통과 자극을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운맛을 먹은 뒤의 부대낌과 고통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매운 음식을 먹은 뒤 감내해야 하는 위장과, 다음날 화장실 변기 위에서의 고통이 30 후반을 넘어서자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자극을 좋아하고, 매운 맛을 좇는 트렌드는 한동안 이어질 듯 싶다. 20년 가까이 팔도에서 라면을 연구해온 한 박사님도 마라의 트렌드가 우리나라에도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마라왕 비비면 출시 이후 인터뷰를 한 김영종 팔도 연구1팀 팀장은 "얼얼한 마라의 매운맛은 단기 트렌드가 아니라 장기 트렌드로 지속될 것"이라면서 "팔도에서도 비빔면 마라왕을 출시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마라왕 브랜드를 통한 다양한 마라 라면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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